SNAKZINE

비회원이 작성한 글입니다!

글작성시 입력했던 비밀번호를 입력해주세요.

목록
October, 2021
[조선인이 쓰는 조선 이야기] 해양사업의 축복은 왜 저주가 되었나?

<글 : 대우조선해양 이종무 책임 jongmoolee@dsme.co.kr>

 

(4) 해양사업의 축복은 왜 저주가 되었나?

이번 편은 '해양 플랜트 사업'의 이야기입니다. 최근 까지도 한국 조선 산업이 최정상에서 바닥으로 미끄러진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해양 플랜트 사업의 실패 원인에 대하여 세간에는 이미 많은 분석이 넘치지만, 이번 기회에 저의 시각으로 다시 한번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해양 플랜트 사업은 한국 조선 산업의 미래를 위해 한 번쯤은 꼭 다시 한번 들여다봐야 할 '아픈 손가락'입니다.

 

2010년대 중반, 오랜만에 다시 찾아오게 된 한국의 한 대형 조선소는 제가 십여 년 전 '익숙히 봐왔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일단, 야드의 규모가 엄청나게 커졌습니다. 기존에 있었던 드라이 도크 외에도 플로팅 도크, 그리고 해양 프로젝트를 위해 지어진 거대한 육상 건조 설비까지... 거짓말 보태 거의 규모가 두 배가 되어있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조선소의 배후 주거 단지는 거의 '천지개벽'을 한 것 같았습니다. 예전에는 그저 작은 가게가 몇 개, 이름이 낯선 지방 브랜드 아파트 몇 동이 있었던 '시골 동네'가, 전국구 톱 브랜드 아파트를 포함 10여 개가 넘는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는 '미니 신도시'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이곳에는 수년 전부터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면서 한국의 톱티어 아파트 브랜드들이 분양 시장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리고 한 가구당 수천만 원에 달하는 분양권 프리미엄이 거래 시장을 과열시키고 있었습니다. 거래 제한도 없었던 시절인지라, 직원들은 분양권을 사거나 분양된 아파트 거래를 통해 짭짤한 부가 소득을 올릴 수 있었다고 합니다. 아예 아파트를 몇 채 사서 렌털 사업에 뛰어든 분들도 있었습니다. 인테리어 및 기본 가구를 구비하고 월세를 내놓으면 그 당시 이 지역에 거주가 필요했던 수천 명에 달하는 주문주(선주) 감독관들과 엔지니어링 회사의 외국인들이 들어와 고가의 렌트비를 지불하였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조선소에서 고용하는 임시 직공의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됨에 따라 이들이 머물 숙소가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조선소 주변의 수많은 원룸촌이 이 수요를 충족시켰습니다. 이때 조선소의 직원들 중에서 원룸 주택을 짓거나 매입하여 임대를 놓은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높은 연봉 외에도 한 달에 수백만 원씩의 부가 수입을 올렸다고 합니다. 또한 이렇게 조선소에 취업한 상주 인원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니, 먹고 마시는 장사도 불야성을 이룹니다. 그야말로 '길거리의 개도 만 원짜리를 물고 다니는' 조선소의 상황이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조선소의 사업이 선박 사업 중심에서 설비와 인력이 막대하게 소요되는 해양플랜트 사업 중심으로 옮겨가게 되면서 발생한 결과였습니다.

앞서 시리즈에서 소개한 대로 2000년대는 중국을 위시하여 러시아, 인도, 브라질 등 신흥 시장의 규모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시기였습니다. 또한 저금리 정책 등 미국을 포함한 주요국의 경제 부양 정책으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경제의 규모가 커지던 시대였습니다. 이는 필연적으로 에너지 수요의 급증을 불러오게 됩니다.

 

그러나, 공급 시장의 사정은 달랐습니다. 911 테러로 촉발된 2003년 중동 전쟁 이후 OPEC의 에너지 시장에 대한 지배력은 더욱 강화되었습니다. 여유 생산능력이 부족했던 중동의 오일 부국들은 수급을 조정하며 막대한 이익을 올렸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공급에 문제가 생길 지정학적, 정치적 요인들이 발생했습니다. 주요 산유국에서는 '자원민족주의'가 대두되었습니다. 게다가 중동은 이란의 핵 문제와 터키와 쿠르드족의 충돌로, 아프리카는 나이지리아의 정치 불안으로, 남미는 미국과 베네수엘라와의 갈등으로 공급의 불안 요소를 가중시켰습니다. 이런 불균형적 상황에 의해 유가는 계속 상승 행진을 하다가 2008년 7월에는 배럴당 140.70달러라는 역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게 됩니다. 세계 금융 위기로 일시적으로 조정을 받기도 했지만, 이후 유가는 2014년까지 배럴당 100불 내외를 유지하며 장기간 고공행진을 계속하게 됩니다. 이런 상황으로 인해 에너지 소비국들의 불안은 가중되었고, 세계 주요국들의 '에너지 안보 정책'에는 비상이 걸립니다.

 

그러나 세계 주요국 및 에너지 메이저 업체들은 이미 7~80년대의 '오일 쇼크' 상황에서의 성공적 경험이 있었습니다. 유가의 폭등과 경제 침체의 문제를 '새로운 에너지 자원'의 발굴로 해결했던 경험입니다. 그들은 즉시 '모범 답안'을 펼쳐 행동에 들어갑니다. 이런 각국의 뜨거운 열기에 '세계의 돈줄'들이 기름을 붓습니다. 중동 국가들이 고유가로 벌어들인 막대한 오일 머니, 그리고 금융 위기 이후 갈 곳이 없었던 전 세계의 투기 자본들이 바로 그것입니다. '심해 에너지 개발 시장'이 고속 성장을 넘어 과열의 양상으로 치닫게 됩니다.

 

조선의 수퍼사이클이 금융 위기에 이은 경제 침체로 급격한 내리막길을 보이고 있었을 때, '해양 에너지 개발 붐'은 한국의 대형 조선소들에게는 정말 '신이 내린 동아줄'과 같은 일이었을 것입니다.

 

'대규모의 설비 투자'가 '급작스러운 시장의 축소'를 만나면 정말 엄청난 골칫거리가 됩니다. 특히 조선 산업에서의 설비 투자는 막대한 자금이 들어갑니다. 게다가 한번 늘린 설비 및 인력을 단시간에 다시 줄이기는 매우 어려운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도크, 안벽 등 고정 건조 설비는 따로 분리해 매각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설비에 일단 투자한 이상 감가상각 기간 동안 매출과 이익을 냄으로써 그 투자비를 '뽑아 먹는' 수밖에는 특별한 방법이 없습니다.

 

2010년대 중반은 해양플랜트 시장이 정점에 이른 시점이었습니다. 해뜨기 직전이 가장 어둡다고 했던가요? 해지기 직전의 노을도 가장 아름다운 법입니다. 각 조선소의 매출은 불과 몇 년 전과 비교 해 거의 2배가 되어있었습니다. 매출 10조를 훌쩍 넘기고 20조를 꿈꾸는 거대 조선소!

 

선박 사업에서 매출 규모가 가장 큰 선박은 단연 LNG선입니다. 2020년 기준, 대형 LNG선의 경우 대략 2,000억 정도로 거래가 됩니다. 이 LNG선을 1년에 약 15척 지으면 약 3조의 매출이 됩니다. 여기에 약 1,500억 원 정도 하는 메가 컨테이너를 10척 지으면 1.5조, 여기에 또 약 1,000억 원 정도 하는 VLCC를 10척 지으면 약 1조 원... 이렇게 고부가가치 선박만 골라서 35척 정도 지으면 1년에 올릴 수 있는 매출은 약 5.5조 원 정도가 됩니다. 여기에 LPG선이나 셔틀 탱커와 같은 중형이지만 선가가 높은 고부가가치 선박을 4~5척 더 짓는다고 해도 하나의 대형 조선소에서 선박 사업만 가지고 1년에 6조 매출 이상을 하기는 정말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해양 플랜트 사업은 다릅니다. 스펙에 따라 천차만별이긴 하지만 보통 시추 장비 중 드릴십 같은 경우가 1기당 약 5천억 원 정도입니다. 심해 개발용 대형 생산설비인 FPSO나 FLNG는 프로젝트당 통상 1조 원이 넘고 큰 프로젝트의 경우는 약 2~3조 원이 넘어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1년에 시추 장비 몇 기와 대형 생산설비 몇 개 프로젝트만 동시에 진행하더라도 해양사업의 규모가 조선 사업 전체 매출 규모를 넘어서게 됩니다. 즉, 조선소의 매출이 10조 원이 넘어가는 것은 일도 아니게 됩니다. 한국의 대형 조선소들은 이렇게 해양 플랜트 사업의 붐을 타고 매출 규모 면이나 인력 운영 규모상으로도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거대한 몸집'을 가지게 됩니다.

<(좌) 세계 최대 규모 FPSO "에지나" (우) 세계 최대 FLNG "프렐류드" 각각의 가격이 3조 3천억 원, 2조 8,000억 원 정도로 알려져 있다 (출처: 삼성중공업)>

 

그러나, 이렇게 잘 나가던 수많은 '심해 에너지 자원개발' 사업들은 뜻밖의 강력한 암초를 만나게 됩니다. 바로 미국의 '셰일 가스 혁명'이 그것입니다.

 

혁명의 사전적 의미는 "이전의 관습, 제도, 방식 따위를 단번에 깨뜨리고 새로운 것을 급격하게 세우는 일"입니다. 2010년대 중반, 세계 에너지 시장에서 이런 '혁명적 사건'이 일어납니다. 바로 미국이 사우디와 러시아를 누르고 '세계 최대 산유국'이 된 것입니다. 그것도 타국의 에너지 자원을 빼앗거나 사들여서 된 것이 아닙니다. 그저 자국 영토 내 '경제성이 없던' 자원을 혁신적 기술을 이용하여 '환골탈태' 시킨 성과이니 혁명이란 단어가 모자랄 지경이었습니다. 천연가스 광구보다 더 깊은 곳에 위치하고 수평적으로 분산되어 있어 경제적 가치가 없었던 '셰일 가스'를 '수평 시추' 및 '수압 파쇄'라는 혁신적 공법을 이용하여 비교적 낮은 원가에 확보할 방법을 개발한 것입니다. 이로써 미국은 자국에서 약 100년을 사용해도 다 쓸 수 없는 새로운 에너지 자원을 확보합니다. 그리고 '최대 소비국'이 아닌 '최대 산유국'으로서 세계 에너지 시장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됩니다.

 

이 셰일 가스 혁명에는 '장기 고유가 시황'이 결정적 역할을 하였습니다. 유가가 낮은 시절에는 셰일 가스를 개발하는데 필요한 기술과 개발 사업에 '돈'을 댈 투자자가 없었습니다. 또한 미국도 자국 내 비싼 자원을 개발하기보다는 OPEC이나 다른 산유국에서 '합리적인 가격'으로 에너지 자원을 사서 소비 및 비축하는 것이 국가의 이익에 부합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앞서 말씀드린 대로 유가가 고공행진을 하고 수급의 불안으로 각국의 '에너지 안보' 문제가 심각하게 부각되는 상황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미국의 '셰일 가스 혁명'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환경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미국의 셰일 광구 및 개발 현황 (2015년, 출처: U.S. Department of Energy)>

 

미국의 이러한 변화를 다른 산유국들이 환영했을까요? 당연히 아니겠지요. 그중 누가 가장 마음이 불편했을까요? 네, 아무래도 직전까지 '에너지 안보 협력'을 매개로 미국과 엄청 친하게 지내왔던 사우디아라비아가 가장 그랬을 것입니다.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도 가장 큰 친구이자 고객이었던 미국이 가장 위험한 경쟁자가 되었으니깐요. 그래서 사우디아라비아가 수장인 OPEC은 극한의 결정을 합니다. 바로 '미국의 혁명'을 무산시키기 위한 '치킨 게임'에 돌입한 것입니다. OPEC은 전 세계에 오일 공급을 엄청나게 늘려 유가 하락을 주도합니다. 아직까지는 생산성이 낮아 배럴 당 60~70불 선에 머물고 있는 셰일 가스의 '원가적 한계'를 공략한 것입니다. 유가를 끌어내려 미국 셰일 산업계를 '고사'시키려는 의도였습니다. 에너지 주도권을 두고 벌어진 강대국 간의 이 '위험한 게임'은 금융 위기 이후 장기 침체의 길로 들어선 세계 경기와 만나, 유가의 급격한 하락 및 장기 저유가의 상황을 만들어 냅니다. 한국 대형 조선소의 '고난의 시간'이 다가온 것입니다.

 

2015년 가을, 한국 언론은 한국 대형 조선소 3사의 천문학적 손실을 '대서특필'합니다.

 

“3사 총손실이 10조 원을 훌쩍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중략) 업계에 따르면 대형 3사가 2010년부터 해양플랜트를 대거 수주한 이후 올해 상반기까지 발생한 손실만 8조여 원에 달한다.”

 

언론에서는 손실의 원인을 두 가지로 설명했습니다. 첫 번째는 '준비 부족'입니다. 조선소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해양사업에 무분별하게 뛰어들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핵심기술 미확보'입니다. 조선소가 핵심기술인 기본설계와 기자재 생산능력을 갖추지 못해 해양플랜트 납기 지연에 대응하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일견 맞는 이야기지만 저는 핵심이 빠진 분석이라고 생각합니다.

 

언론의 지적처럼 '준비의 부족'과 '핵심기술의 미확보'가 그 원인들 중 하나임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한국 조선소들은 이전에도 꾸준히 해양 플랜트를 수주해왔습니다. 그리고 그때에도 '경험과 준비의 부족', 그리고 설계와 기자재 관련 '핵심기술 미확보'의 문제는 더하면 더했지 결코 나은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이전의 해양 프로젝트들은 천문학적인 손실이 아닌 견실한 매출과 이익을 가져다주는 매력적인 사업들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사실 해양 플랜트, 특히 심해나 극한의 해상 환경의 프로젝트들은 한국 조선소들이 쉽게 확보하기 어려운 고도의 엔지니어링 기술과 수많은 경험이 요구됩니다. 1859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에서 에드윈 드레이크(Edwin Drake)가 '수직 굴착 시추기'를 발명하였습니다. 그 이후로도 미국과 유럽은 국가적 에너지 자원 개발 정책과 막대한 금융적 지원을 바탕으로 탐사와 시추, 그리고 생산 분야의 기술과 경험을 오랜 기간 축적해왔습니다. 그리고 조선 산업의 중심이 한·중·일로 넘어온 이후에도 선박과 해양사업의 근간이 되는 기본 역학과 엔지니어링, 그리고 핵심 기자재 분야에서 미국 및 유럽의 존재감은 아직도 막강합니다.

 

또한 해양 플랜트를 발주하는 주문주 입장에서, 해양 에너지 자원 개발에 수반되는 엄청난 리스크를 누구와 나눌 것이냐의 문제는 더욱 보수적인 사고의 영역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분야에서 한국의 조선소가 '믿을 수 있는 엔지니어링 파트너'로 인정받는 일은 아직도 '갈 길이 먼' 사안이라 생각이 됩니다.

 

만일 이 분야가 욕심이 난다면, M&A를 통해 유럽이나 미국의 엔지니어링 업체를 인수하여 기술, 노하우 차이를 단기간에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이 검토되어야 합니다. 또한, 국가 차원에서도 해외 에너지 자원 투자에 적극 나서서 '한국 업체 주도의 개발 경험'을 쌓게 해주는 등의 지원이 있어야 합니다. 결국 앞서 시리즈에서 설명해 드린 '조선 산업의 진입 장벽'과 같은 것이 해양 에너지 사업에도 존재하는 것입니다. 특히 탐사, 개발, 생산 등의 업스트림(상류) 분야에는 극적인 '기회의 이동' 없이는 후발국, 후발 업체가 넘볼 수 없는 너무나도 '높은 장벽'이 존재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므로, '준비의 부족'과 '핵심기술의 미확보'가 부족한 부분이 될 수는 있어도 천문학적 사업 부실의 핵심 원인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핵심일까요? 바로 지나친 '낙관'과 '욕심'입니다.

 

한국 대형 조선소가 천문학적 손실을 본 데에는, 해양 플랜트 계약에 일부 섞여 있던 비정상적인 '일괄 지불방식 계약구조 (Lump-sum Contract)'의 역할이 가장 컸다고 생각합니다. 이 계약은 간단히 얘기하면 '계약서에 합의된 확정 금액 이상의 모든 추가 비용에 대해서 조선소가 일괄 책임을 지는 계약'을 말합니다. 일반적으로는 해양 플랜트 사업에서, 더더군다나 설계, 조달, 생산을 모두 책임지는 EPC 계약에서는 손실 총액이 한정된 일부 아이템에서만 허용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손실이 무한정으로 늘어날 리스크'가 있는 계약 범위와 아이템에도 이런 계약구조가 무분별하게 적용되었습니다. 왜 이런 계약이 이루어졌을까요? 한국 조선소들이 가지고 있던 과거의 '긍정적 경험'이 '낙관적 판단'으로 작용을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해양 프로젝트는요, 나중에 안 가져가면 주문주의 엄청난 사업 기회 손실로 이어지니깐 처음 계약은 그렇게 되어있어도 나중에는 다 해결이 됩니다. 추가 비용은 나중에 협상을 통해 Change Order로 다 받아낼 수 있을 겁니다. 이 바닥이 원래 그렇습니다. 저희만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 다른 조선소도 다 그렇게 해요..."

 

거짓말이었을까요? 아닙니다. 대규모 자금과 복잡한 계약 관계로 얽혀 있는 해양 에너지 자원 개발 시장입니다. '고작' 장비의 일부 문제 때문에 전체 사업 일정이 늦춰지거나 다른 계약에 영향을 받고 싶은 주문주는 없을 것입니다. 더더군다나 고유가 상황에서는 조선소와 사소한 아이템을 가지고 문제를 일으켜 계약을 다투고 장비를 손에 늦게 쥐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판단입니다. 적절한 선에서 타협하여 장비를 빨리 현장에 투입하여 이익을 내는 것이 낫다고 판단을 하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과거의 경험에 근거한 대형 조선소의 이런 '낙관'은 중소 조선소의 키코에 대한 '낙관'만큼이나 위험한 판단이었습니다.

 

유가가 폭락하자, 조선소가 만들고 있던 수조 원대의 생산설비들은 투입될 해양 프로젝트들의 사업성이 줄줄이 악화되며 위기에 처합니다. 즉, 장비가 현장에 투입되기도 전에 기대 수익이 확 낮아지거나 심지어는 원가 이하의 시장을 맞닥뜨리게 된 것입니다. 주문주는 사업성이 악화된 프로젝트의 전체 원가를 절감해야 할 필요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폭락한 유가 시장을 정면으로 돌파하기보다는 어떻게든 늦게 가져가서 유가 회복의 시점을 노려보고 싶은 생각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드릴십 등의 시추 장비의 경우는 더욱 심각합니다. 실제 프로젝트 기반의 생산설비와는 달리 시추 장비는 '돈이 좀 될 거 같으니 우리도 일단 하나 발주해 보자'라는 생각의 '투기 발주'건 들이 상당량 섞여 있었습니다. 이런 시추선들은 유가 하락으로 침체된 시장에서 용처를 구할 수 없어 오갈 데 없는 신세로 전락합니다. 투자자는 이익은커녕 원금도 회수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어떻게라도 계약을 지연시키거나 혹은 취소시켜 부담을 조선소에 전가하고 싶은 욕심이 생기게 됩니다. 이때부터 주문주들은 사소한 시빗거리 하나도 끝까지 물고 늘어지고 드러난 이슈 사항에 대해서는 원칙대로 처리하는 것을 고집합니다.

 

이렇게 OPEC이 미국의 셰일 혁명을 잠재우기 위해 쏘아 올린 작은 공은 가장 먼저 해양플랜트 시장을 초토화 시킵니다. 그리고 그 피해는 가장 약한 고리인 한국 대형 조선소들에게 집중됩니다.

 

두 번째, 조선소의 '욕심'은 이 상황을 통제 불능의 상태로 몰고 갔습니다. 만일, 조선소가 예전처럼 1년에 2~3기의 해양 프로젝트를 계약부터 인도 시까지 차근차근 관리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시장이 붕괴가 되든, 주문주가 투기 발주를 하든, 계약의 내용을 충실히 이행하고 방어해 가면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의 대형 조선소들은 '해양 시장의 활황'을 보며 큰 욕심에 사로잡혔습니다. '물 들어온 김에 노를 저어' 기존과는 '다른 레벨'의 회사를 만들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던 것입니다. 그리고는 '과거 성공의 경험'을 소환하여 이 욕망을 정당화시켰습니다. 전혀 다른 성격의 사업인데도 과거 조선 사업에서 규모를 단기간에 성공적으로 키워낸 경험을 재현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또한, 사내에 부족한 설비와 및 인력은 '사외의 무한한 자원'을 이용하면 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적극적인 사외 설비 확장까지 추진하였습니다. 한 해에 2~3 프로젝트를 관리하던 조선소의 인력은 거의 그대로인데, 사내 물량이 폭증한 상황에서 방대한 사외 자원까지 관리해야 했으니 얼마나 혼란스러웠겠는지 상상이 되실 겁니다.

 

'핵심기술'을 가진 외국계 엔지니어링 업체와 기자재 업체의 상황은 더욱 심각했습니다. 정상 수준의 3~4배에 해당하는 물량을 수주받아 놓았습니다. 기본적인 서비스 품질이 떨어질 뿐 아니라 조선소의 긴급한 요청사항에는 거의 대응이 불가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이니 한국 조선소의 자랑이었던 품질관리, 납기관리는 오간 데 없어졌습니다. 야드는 오합지졸의 비정규 설계, 생산인력이 넘쳤습니다. 게다가 관리 의지를 잃은 주문주와 중심을 못 잡는 엔지니어링, 기자재 업체가 뒤섞여 일이 되려야 될 수가 없는 그야말로 아비규환의 상태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렇게 혼잡했던 조선소의 상황에 대한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들었습니까? XXX 조선소 OOO 안벽에 있는 ㅁㅁㅁ 프로젝트에 수천 명의 작업자들이 작업장에 올라가려고 승선 엘리베이터 앞에 줄을 서는데, 다 올라가면 몇 시간이 걸린다고 합니다. 올라가면 자재가 없어요. 또 오르락내리락, 그러고 자재 겨우 구해서 용접 몇 방 놓다 보면 점심 먹으러 가야 하는데 또 엘리베이터 줄 서야 하니, 11시 전부터 엘리베이터 앞에서 줄을 선답니다. 그러고 나서 점심 먹고 또 올라가는데 하세월... 일이 되겠습니까? 그런데도 사람을 구할 수 없다고 난리입니다. 전국의 일용직이 다 여기로 온다는 소문이 있어요. 물량 기준이 아니라 시급 기준으로 돈을 준대요. 경험이 없어 아무것도 못 하는 사람도 일당이 십만 원이 넘는대요...”

 

일은 안되고 프로젝트별로 수천 명의 비숙련 임시 직공들은 일당 받으러 오르락내리락, 그때의 사정은 정말 심각한 상황이었던 것 같습니다.​
<해양플랜트 작업장 승선 대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발된 한 번에 300명이 탈 수 있는 골리앗 엘리베이터 (출처: 송산엘리베이터)>

 

조선소마다 발생한 천문학적 손실은 이렇게 조선소의 '낙관'과 '욕심'에 의해 발생된 리스크가 현실화된 결과입니다. 즉, '해양플랜트 시장의 붕괴' 상황에 처한 주문주가, 조선소의 관리력 부족에 의해 발생한 막대한 추가 생산 비용과 납기 지연 페널티를, '계약서대로' 조선소에 무한 책임을 지워 발생한 것이라고 이해하시면 거의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어떻게 3개의 대형 조선소가 이렇게 하나같이 같은 실수를 저지를 수 있었을까요? 단 한 회사라도 이 '죽음의 도박판'에서 다른 판단을 했었더라면, 지금쯤 오히려 엄청난 기회가 되었을 텐데요. 각 회사 손실 금액이면 미래가 유망한 신사업 투자뿐 아니라 지금쯤 몸값이 엄청나게 떨어져 있는 세계 유수의 조선해양 엔지니어링, 기자재 회사를 몇 개 정도 인수해도 될 만한 정도이니깐 말이죠.  

 

한 산업 전체가 동시에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려면 '엄청난 확신'이라는 것이 존재해야 하는데, 그 확신은 당시 수년째 지속되었던 고유가 상황과 공신력 있는 기관의 향후 사업 예측, 그리고 산업을 둘러싼 매우 적극적인 지원 환경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일단, 유가의 고공행진, 그것도 10년 가까이 지속된 고유가 시황은 심해 해양 플랜트 시장이 과열되기에 충분한 조건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향후 예측과 지원은 어땠을까요?

 

'공신력 있는 시장 예측'에 대한 일화는 다음과 같습니다. 2013년 Big 3중 한 조선소가 세계 굴지의 컨설팅 회사인 M 사에 의뢰하여 중장기 전략을 세웠는데, 이때 수억 원을 들여 받은 그 컨설팅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0년 뒤인 2023년 귀사의 매출은 약 28조 원으로 늘어날 것이고, 이 중 특히 해양플랜트 사업이 연간 15조 원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해양플랜트 시장이 매년 7%대의 성장을 할 것이기 때문에 이 분야의 생산 역량을 강화해 경쟁자와의 격차를 벌릴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M 사의 '예측'은 약 3년이 지나 이렇게 바뀝니다.

 

“해양사업은 앞으로도 전망이 없으니 회사가 해양사업에서 철수하는 것을 권고합니다.”

 

같은 컨설팅 회사에서 내린 예측과 권고입니다. 다만, 이미 한국 조선소들이 해양플랜트 사업으로 천문학적 손실을 본 이후라는 상황만 다릅니다. 저는 만일 컨설팅 업계에도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는 계약이 있었다면 'M 사 같은 회사들이 제일 먼저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그렇다면 해양플랜트 사업을 하고 있는 조선 산업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어땠을까요? 2012년 5월, 정부의 정책을 전문적으로 방송하는 매체에서 송출한 내용을 그대로 옮겨 봅니다.

 

“정부가 세계 최고의 조선 산업 역량을 바탕으로 해양플랜트 산업을 적극 육성하기로 했습니다. 2020년에는 해양플랜트 수주액을 800억 달러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목표입니다... (중략)... 정부가 해양플랜트 산업을 제2의 조선 산업으로 육성하기로 한 것도 시장규모가 2010년 1천400억 달러에서 2020년에는 3천200억 달러로 가파르게 오름세를 보일 것이라는 전망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지난해 257억 달러 수준인 해양플랜트 수주액을 오는 2020년까지 800억 달러로 3배 이상 늘리고... (중략)... 해양플랜트 산업 육성을 통해 10만 명에 이르는 신규 일자리 창출과 함께 중소 조선업체들에게 해양플랜트 산업 진출 기회가 제공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정말 대단한 청사진이 아닙니까? 이런 정부의 전망과 계획하에 정부 산하 기관들은 적극적 정책 지원 및 R&D 자금을 풀었습니다. 국책 은행, 공적 수출신용기관들도 RG 및 해외 선주의 파이낸싱까지 포함한 적극적인 '해양플랜트 사업 지원 정책'을 펼친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시장에 대한 합리적 판단, 공신력 있는 예측기관의 균형적 분석, 정부 지원 중 하나만이라도 해양사업을 무리하게 확장시키는 데 있어 경고음을 울리고 브레이크를 걸어줬더라면 하는 부질없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2021년 현재, 한국의 조선소들은 과거의 아픔과 수년간 끝 모를 침체에 빠졌던 해양 플랜트 시장의 기억을 뒤로하고, 몇 차례 의미 있는 수주에 성공하는 등 사업 여건이 서서히 호전되고 있음을 느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도 마냥 즐거워하지는 못합니다. ‘혹시 이번에도 또 엄청난 손해를 입게 되는 게 아닐까?’

 

그러나 저는, 세간의 우려와는 달리, 한국 조선소들이 해양 플랜트 사업에서 '예전과 같은 큰 실수'를 또다시 반복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우선 조선소 스스로가 과거의 실패에 대한 엄청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프로젝트에 위험한 요소가 있다더라’라는 작은 소문이라도 있다면, 내부 구성원들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사실관계와 대응 방안을 설명해 달라고 할 정도입니다. 외부의 여건은 더욱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어느 누구도 해양 플랜트 시장을 낙관적으로 바라보지 않습니다. 그리고 계약 성사를 위해 필수적인 금융기관의 지원 받기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금융기관들은 ‘과거 실패 사례와 어떻게 다른지?’를 꼬치꼬치 캐묻습니다. 그리고 만일 의심이 되는 부분이 해소되지 않으면 지원 실행 자체가 불가능한 시스템을 갖춰놓고 있습니다. 그러니 현재는 한국의 조선소가 과거와 같이 ‘낙관’과 ‘욕심’에 빠져 위험이 무한대인 계약을 관리능력을 한참 벗어난 물량만큼 수주한다는 것은 꿈조차 꿀 수 없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오히려 근거 없는 오해와 필요 이상의 부정적인 인식 때문에 안정적인 매출과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는 사업 기회들까지 놓쳐버리고 향후 서서히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입니다. 다른 경쟁국에게는 또 하나의 메가톤급 ‘기회 이동’이 될 일입니다.

 

해양 플랜트 사업은 대형 조선소들이 이미 갖춰놓은 인력과 설비, 시스템 및 노하우 활용을 하기 위해서라도 일정 규모의 수주를 통해 안정적인 물량을 지속적으로 확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만일 해양사업을 섣불리 포기하여 분리 매각이 불가능한 설비와 인력, 노하우 및 투자금액이 그대로 매몰된다면 타 사업의 경쟁력도 동반 부실화될 위험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해양 플랜트 사업 노하우 및 기술은 향후 한국의 조선 산업의 미래와 직결된 ‘탄소 중립 사회, 친환경 에너지 대전환 패러다임’에서 많은 가능성과 시너지가 있는 분야라는 것입니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국토가 좁고 사막과 같은 불용 대지가 없어 친환경 에너지 혼합 구상 시 ‘바다의 활용’을 적극적으로 고민할 수밖에 없는 국가들이나, 제조 기반이나 기술 인력 수급이 열악하여 자국 내에서 에너지 관련 설비 및 인프라를 자체 제작하기 어려운 신흥 국가들이 향후 해양 부유식 에너지 인프라와 기술의 막대한 수요처로 부상을 할 것인데, 고부가가치 해양플랜트 설계 건조 기술과 기술을 이미 보유하고 있는 한국 조선소가 이런 새로운 시장에서도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해양플랜트 사업은 오늘날의 가치뿐 아니라 한국 조선 산업의 발전과 미래를 위해서라도 섣불리 포기하거나 간과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사업 영역이라 것을 독자들께 꼭 기억시켜 드리고 싶습니다. 해양플랜트 사업이 과거의 오명을 깨끗이 벗고 한국 조선 산업의 미래이자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화려하게 부활할 날을 두 손 모아 기대해 봅니다. 

 

에필로그

저는 4회에 걸친 ‘조선인이 쓰는 조선 이야기’ 시리즈를 통해, 한국 조선 산업의 희망찬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라면 절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과거의 이야기’들을 공유해 드렸습니다. 독자들께서도 시리즈를 통해, 한국 조선업이 어떻게 최고의 위치에 올랐고, 어떠한 아픔과 실수가 있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아직도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지에 대하여 기존의 이해를 조금이나마 넓히실 수 있는 시간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한국 조선 산업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요? 

 

시리즈에서 밝힌 바와 같이 조선산업은 개별 기업의 경쟁력, 국가의 이해와 지원뿐 아니라 글로벌 경제와 국제적 이해관계까지도 영향을 크게 받는 산업이므로 섣불리 미래를 예측하기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다른 건 몰라도, 한국 조선 산업의 미래는 우리가 지켜보는 향후 몇 년간의 준비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이토록 중요한 시기에는 우리 '조선인' 스스로의 확신뿐 아니라, 국가 기관, 투자자, 주주들을 포함한 주변의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관심과 지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도 압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조선 학회 회원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산업에 대한 정확하고 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조선 산업의 비전과 매력을 대내외에 널리 알리고, 힘과 지혜를 모아 앞으로의 한국 조선 산업의 긍정적 미래를 함께 만들어가는데 회원들께서 최고 적임자라는 것은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께서 그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실 것이라 기대합니다. 그리고 그 길에 저의 글들이 작게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의 부족한 글을 4회에 걸쳐 읽어 주신 여러분, 그리고 글을 게재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신 대한조선학회 웹진 편집진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조만간 다른 글들로 또다시 찾아뵐 수 있게 되길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