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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2020
[알기 쉬운 전공 에세이] 우리나라 공기부양선 40년사 (3/3)

<글 :  ㈜우리해양기술 김상근 부사장  Sgkim5280@wooriocean.com>

-'우리나라 공기부양선 40년사'는 2020년 2월호 웹진부터 세 번에 걸쳐 연재됩니다.-


I. 서 언
II. SES 개발 및 건조
III. Hovercraft 개발 및 건조
5. 27M급 Hovercraft (TURT-6, LSF-II) 개발
6. LSF-II 양산
IV. 후 기

5. 27M급 Hovercraft (TURT-6, LSF-II) 개발


1) 경과

● 기술제휴 생산
LSF-II 사업은 사업이 시작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었다. 당시 한진중공업은 기존 양사(코리아타코마조선, 한진중공업)의 연구기능을 통합한 새로운 연구소를 설립하였으며, 필자는 초대 연구소장으로 코리아타코마조선의 연구자료 및 연구인력과 함께 93년 12월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에 새로운 터전을 마련하였다. 필자는 한진중공업의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기 위해 골몰하였으며 대형 Catamaran, 대형 SES, WIG, Car Ferry 등을 연구하였다.

1996년 해군의 LSF(Landing Ship Fast)-II 신규사업이 확정되었으며, 필자를 비롯하여 한진중공업은 자체 개발을 강력히 주장하였으나 앞에서 언급한 LSF-I의 저평가로 해군은 성능 보장, 전력화 일정을 고려하여 미해군이 운용하는 LCAC 기술도입 생산을 선호하였다. 참고로 LCAC(Landing Craft Air Cushion)는 미해군이 1970년대부터 개발되어, 개선과 수정을 거듭하여 총 99척(시험선 JEFF(A), JEFF(B), 미해군 91척, 일본 자위대 6척)을 건조한 미해군이 자랑하는 공기부양 상륙정으로 대형수송함인 LSD, LPD, LPH등에 탑재되어 전세계를 누비고 있다.
 

한진중공업은 체면이 손상 되었지만, 개발기간 없이 다수의 함정을 바로 생산할 수 있어 회사 매출 증대에 유리하며 또한 한 수 배울 수 있는 기회로 생각하여 1997년 미국의 TM&LS사와 기술협력 계약을 체결하였다. 2년여 양사간에 절충을 거쳐 기술도입 생산계획을 준비하였으며 막판에는 유성에 있는 오피스텔을 수개월 임차하며 필자와 영업팀은 해군과도 조율을 거쳐 미국의 TM&LS사와 기술도입 생산계획을 마무리하였다.
 


<미해군의 LCAC 발전사>


● 독도함 설계
이제 LSF-II 사업은 필자의 도움 없이도 잘 굴러갈 수 있는 상황이 되었으므로, 필자는 새로운 사업에 집중하였으며 해군의 대형수송함(LPX, 독도함)사업 계획에 발맞추어 자체적으로 해외자료 조사, 타당성 검토, 초기설계를 진행하며 착실히 준비하였다. 독도함은 단군 이래로 가장 큰 함정으로 여단급 상륙작전을 위한 수직상륙 (상륙군은 헬기를 이용하여 수직으로 적 후방에 안착)과 수평상륙 (LSF-II 2척을 이용하여 여단급 상륙장비를 신속히 연안으로 수송)을 할 수 있는 매력적인 함정이다. 당시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는 PKM 건조사업 이후의 방산 신규사업이 없어 특수선 부문은 폐쇄되었고, 마산공장 또한 방산 물량의 감소로 설계인력은 계속 자연 감소되어 위험수준이었다. 필자는 양쪽을 모두 살리는 최선의 방책이 대형수송함사업을 수주하는 것이라고 판단하여, 총력을 다하였다. 특수선설계 인력이 없는 소수의 비정규군으로 대형조선소의 정규군과의 힘든 경쟁이었지만, 회사의 자원을 총동원하여 제안서를 만들었으며 조함단에서의 평가회의는 필자가 발표하였다. 회사에서는 다윗과 골리앗에 비유하며 큰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다행히도 상륙함, 수송함에 대한 오랜 경험과 축적된 기술을 인정받아 대형수송함 설계사업을 수주하였다. 이어 마산의 특수선설계팀은 영도로 이전하며 LPX(독도함) 설계사업이 진행되었으며, 필자는 Project Manager로서 설계사업을 총괄하였으며 기존의 기장설계 업무는 물론 국내외 기술용역을 관장하며 설계사업을 성공적으로 완수하였다. 


함정설계 최초로 Digital Mock Up, VR 기술을 적용하여 조함설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해군은 앞으로 설계하는 모든 함정사업에 그 예산을 반영하였다.
독도함은 함 인도후, 운용부대의 엄격한 평가를 거쳐 우수한 성능의 함정으로 평가되었으며 후속함인 마라도함은 별도의 수정사항 없이 건조되고 있다. 최근, 국방 TV “첨단국가의 초석 – 방위산업” 제 108회/ 제109회 (대한민국 해군의 기함-독도함(1) : 2017. 1. 24. 방영, 독도함(2) : 2017. 1. 31. 방영)에 3인(필자, 홍익선대령 – (전)수석감독관, 김상돈대령 – (전)운용부대장)이 출연하여 당시의 개발 story와 김독관실의 견해, 그리고 운용부대의 평가를 정리하였다. 독도함은 우리 해군이 자랑하는 기함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LPX + LSF-II 와 국방TV – 독도함 출연>

 

● 독자 개발
필자는 독도함의 매력에 흠뻑 빠져, 설계사업을 마무리하며 건조사업 준비에 몰두하고 있었는데, LSF-II 사업에 문제가 발생하였다.
LSF-II 사업은 기술제휴 생산으로 미국 TM&LS사와 가계약 되었으나, 사업 착수 직전, IMF 금융사태로 2년 중단되었다가 다시 재개되었다. 회사에서는 2년이 경과되어 TM&LS사의 재견적을 요청하였으며, 미국측의 회신을 보고 모두들 어안이 벙벙하였다. 물가 상승 정도의 소폭 증가를 생각했는데, TM&LS사의 가격은 Double에 가까웠다. 상도의상 있을 수 없는 경우로 처음에는 오타이거나 사무착오로 생각했는데 미국측의 태도는 초지일관 변화가 없었다. 그리고 지난 2년간 TL&LS사는 후속사업이 없어 경영 여건이 안 좋아 Ownership이 바뀌었으며 경영진이 대폭 교체되어 기술임원 1명만 남아있었다. 한진중공업은 필자를 포함하여 사절단을 구성하여 뉴올리언즈에 있는 TM&LS 본사를 방문하여 새로운 사람들과 협상을 하였다. TM&LS사 신임 임원진은 “LCAC 기술은 전세계적으로 독보적인 자사의 기술로 일본 자위대도 LCAC를 직도입하였는데, 한국에 대해 너무 헐값에 기술 이전한다. 이러니까 회사가 망했지.” 필자는 과거 RINA 논문 발표, 특허 등록, Hovercraft 실적 등를 보여주며 우리의 기술 능력을 설명하며 같이 가기를 애원하며, 한편으로는 우리가 자체 개발하면 TM&LS는 강력한 경쟁자를 키우는 것으로 이렇게 되면 향후 해외시장에서는 TM&LS는 번번히 우리에게 패할 거라고 겁도 주었지만 TM&LS는 단호하였다. TM&LS는 “회사 정책이 바뀌었으며, 이 가격은 TM&LS의 최종 가격이니, 할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하라.”는 것이었다. 결국 협상이 결렬되어 빈손으로 귀국하였으며 회사는 조함단과 함께 대책 마련에 고심하였고 필자는 본업인 LPX(독도함)사업에 매진하였다.

해군에서 변화가 나타났다. 과거에는 LSF-II 독자개발을 그렇게도 혹평하던 해군이 필자에게 “당신이 우리나라 최고의 전문가인데, 왜 개발 못하느냐?”고 설득하는 것이었다. 필자는 “LSF-II는 미국과 협상을 잘해서 해결하라, LPX는 나의 마지막 작품으로 나는 LPX에 매진한다.”고 답하며 해군의 설득을 일축하였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하였다. 국방 예산은 육군/해군/공군의 땅 따먹기에서 타 군이 “새끼가 없는데, 어미가 왜 필요하느냐?”고 주장하며 독도함사업의 연기를 제기하며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었다. LSF-II사업이 지연되면 독도함사업도 지연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수차례 사양하였지만, 해군의 설득과 회사의 전폭적인 지원 약속에 못이겨 LSF-II를 독자개발하기로 마음을 바꾸었다. 주위에서는 독도함은 회사의 주력사업으로 미래가 있지만, LSF-II는 작은 사업이며 후속사업도 없어 승진 등 미래가 없으며 또한 LSF-I 이후 10년이 흘러 일할 사람도 없는데, 고생길을 자초한다고 걱정해주는 동료도 있었지만, 국가와 사회를 위한 길이라고 생각하여 고행길을 선택하였다.
 

 
<미해군의 LCAC와 LSF-II>

 

2) 설계

사업 준비와 함께 개발팀을 구성하였으며, 필자는 미국 TM&LS사의 오만하고 거만한 태도에 대한 복수혈전으로 필자의 마지막 혼을 불태우고자, 회사 안팎에서 경험있는 핵심요원들을 모두 불러들이고, 신규 인력을 충원하여 개발팀을 구성하였다.
공기부양정은 항공기와 선박의 중간 형태로, 일반 선박과는 개념과 차원을 달리한다. 예를 들면 상선의 무게 단위는 Ton이며 함정의 무게 단위는 Kg이지만, 공기부양정의 무게 단위는 Gram이다. 이러한 개념이 정립되어야 Project에 투입 가능하므로 초기 6개월은 지속적인 교육으로 일관하였다.
LSF-II 개발은 2002년 11월 개발에 착수하여 개념설계, 기본설계, 상세설계 및 건조를 거쳐 2007년 3월에 한 척, 9월에 1척, 총 2척이 인도되었다.

미해군의 LCAC(Landing Craft Air Cushion)은 현재까지 99척 건조 (일본 자위대에 6척 수출 포함)되었으며 그 중 38척은 SLEP(Service Life Extension Program, 수명 20년을 30년으로 연장)으로 개량되어 많은 개선과 feed back으로 완벽에 가까운 공기부양정이라고 할 수 있다. 한진중공업은 TM&LS사와 기술제휴 협상 시, 알게 모르게 많은 자료를 획득하여 많은 보탬이 되었지만, 한번에 LCAC와 동등 이상의 공기부양정을 만든다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숙제였다. 필자의 생각은 기존의 LCAC를 copy하기도 어렵지만, copy하면 TM&LS사의 제소가 걱정되어 LCAC의 성능을 개선한 개량형 LSF-II 개발에 목표를 두어 아래와 같은 차별화된 System을 채택하였다.
- Bow Thruster 단순화 및 고효율화
- Deep Skirt 채택
LSF-II 설계는 미국의 Hovercraft 전문 용역사인 BLA사(현 Gryphon Technology)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BLA사는 미국의 Hovercraft 전문가인 Mr. Band와 영국의 Hovercraft 전문가인 Mr. Lavis가 설립한 기술용역사로 미국 Hovercraft 기술을 대표하는 전문가들이 포진하고 있다. BLA사는 고효율 Bow Thruster 개발, Deep Skirt 개발 등, LCAC를 뛰어넘는 고성능 LSF-II 개발에 큰 기여를 하였다.
 

 
<LSF-II 모형시험과 LSF-II  Skirt>

   
3) 건조

선체는 Aluminum 구조이며 대부분 3.2mm 박판으로 구성되어 용접 수축 및 변형에 대해 온갖 정성을 다하였다. 시편시험을 통해 용접 순서, 용접 수축 및 변형에 대한 각종 data를 작성하고 Full Scale Mock Up을 제작하여 data를 검증하였으며, 실제 선체를 제작할 때에는 예상되는 용접 변형을 역으로 계산하여 역변형을 두기도 하였다.
추진 축계 및 부양 축계는 높이의 단차가 많고 허용 공차가 제한되어 축계 정열이 매우 중요하며, 선체의 용접 변형이 많을 경우, 축계 정열 자체가 불가능하게 되므로 선체 제작 때부터 세심한 주의를 다하였다.
또한 중량통제가 무엇보다 중요하여, 선체는 piece 제작 때부터 제작중량을 계량하여 기록, 도면중량과 비교하며, 도면중량과 다를 때는 설계팀과 대책을 협의하며 진행되었으므로 선체설계 요원은 용접 변형 챙기랴, 중량 챙기랴, 거의 현장에 상주하였다. 그리고 중량 절감을 위해 Kg당 상금을 거는 등의 노력으로 다행히 중량은 설계 중량과 오차범위 내로 수렴되었다. 필자는 그동안 많은 함정과 특수선을 설계했지만 모두가 중량 통제에는 큰 편차가 있었는데, 처음으로 중량통제에 성공하였으며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생각한다.
 

 
<LSF-II 기공식과 LSF-II 시운전>


3) 시운전 및 운용

LSF-I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지속적인 건의로 Pilot는 장기근무 가능한 준위로 바꾸었으며 ILS 예산도 충분히 확보하여 Spare Part도 충분히 확보하였다. 그리고 본선의 시운전과 승조원 교육을 위해 미해군 LCAC의 교관을 초빙하였다. 시운전 시기에 맞추어 교관이 도착하였으며, 교관은 전문가답게, 단시간에 함 운용특성을 파악하여 능숙하게 함을 운용하였으며, 엄지 척하며 LCAC 보다 운전하기가 편하다는 일성이었다.
우수한 교관 덕분에 시운전은 순조롭게 진행되었으며, 독도함의 Well Dock 진출입도 거침없이 수행하여 시운전 기간은 많이 단축되었다. 시운전 시 기동성능은 물론. 최대속력 70노트를 상회하는 초고속능력을 발휘하여 미해군의 LCAC에 비해 기동성능, 탑재능력, 최대속력, 내항성등 모든 면에서 향상되었음을 입증하였다. 한가지 이상한 일은 하루 시운전이 끝나서 조선소로 복귀하면, 교관은 미국과 장시간 통화하는 경우가 많았었다.
나중에 교관의 귀국이 가까워질 때에서야 장시간 국제 통화의 이유를 알게 되었다. 당시 미해군은 LCAC의 후속선 개발사업으로 SSC(Ship to Shore Connection) LCAC 사업이 진행되고 있었으며 개념설계단계에서 다양한 형태의 공기부양 상륙정을 검토하였다. 교관은 한국 출장 전, 미해군본부의 호출을 받아 LSF-II Check List를 받았으며, LSF-II의 특성을 파악하는 데로 본인의 숙제를 보고하느라 장시간 통화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미해군은 다른 경로로 우리해군에게 LSF-II가 2척이니, 1척을 1년간 빌려달라는 억지 요구도 하였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LSF-II는 성공작이며 미해군은 SSC의 개발에 LSF-II의 장점이 활용되었다고 생각된다.

필자는 LSF-II 개발사업을 끝으로 29년간 정들었던 한진중공업을 떠났으며, 당시는 조선산업의 호황기로 상선분야에서의 새로운 도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6. 27M급 Hovercraft (LSF-II) 양산

1)LSF-II 양산

LSF-II는 10여년의 운용 결과, 성공작으로 판명되어 2017년 초, 동종선 2척이 발주되었으며 2019년 말 추가로 4척이 발주되어 한진중공업에서 건조 중이다.


필자는 기술자문과 신규 인력의 기술지도로 재능 기부를 하고 있으며, 최근 국방 TV “첨단국가의 초석 – 방위산업” 제 110회 (고속상륙정 : 2017. 2. 7. 방영)에 4인(필자, 송준태박사 – (전)ADD 진해기계창장, 홍익선대령 – (전)수석감독관, 김상돈대령 – (전)운용부대장)이 출연하여 우리나라 공기부양선 40년 역사를 정리하였다.
 


<국방TV – 고속상륙정 출연>

 


<미해군의 SSC 개발>


 
2) 신형 LSF-II 개발

우리 해군도 미해군의 SSC사업 처럼 신형 LSF-II를 개발하는 사업으로 개념설계를 진행하고 있다. 미해군은 LSF-II의 강점을 SSC사업에 접목하였고, 우리 또한 SSC의 특성을 면밀히 파악하여 신형 LSF-II에 적극 검토할 것이다. 신형 LSF-II는 미해군의 SSC를 능가하는 지구상에서 가장 High Density & High Performance hovercraft가 되리라고 기대한다.

IV. 후기

1)  필자는 재학시절 (고)김재근교수님을 존경하여 조선공학과를 선택하였으며, 교수님의 지도로 Hovercraft에 대한 졸업논문을 작성하였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당시 공기부양선 개발을 준비하는 코리아타코마조선에 입사, 이어 방산특례 1기로 5년 근무, 그리고 “충무기술상” 수상이 굴레가 되어 아직까지 42년째 공기부양선을 놓지 못하고 있다. 돌이켜 보니, 이러한 우연의 연속들이 필연으로 여겨진다. 교수님은 한분야의 최고 전문가됨을 강조하시며 “송곳을 잘 다듬어 주머니에는 누구든지 손 대면 찔릴 수 있는 뾰족한 송곳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하신 말씀이 기억난다.

2)  공기부양선은 1950년대 영국의 Christoper Cockerell 경이 발명하였으며 한국의 공기부양선은 특수선 기술의 개척자인 (고)이성진사장 (코리아타코마조선 전무, 고려선박기술 사장, 2004년 작고)의 집념과 헌신적인 노력, 그리고 젊고 패기 넘치는 젊은 기술자들이 의기투합하여 만든 쾌거라고 할 수 있다.
젊은 기술자들로는 해군기술장교 출신으로 김국호부장 (전 BV Korea 대표), (고)고성윤이사 (전 삼성중공업 임원, 작고), 김성년과장(전 현대 라이프보트 대표), (고)정균양과장 (전 현대중공업 연구소장, 작고), 유한창대리 (현 ABS 미국 근무), 김강수대리 (전 STX 사장), 황성호대리 (전 미포조선 전무)의 역할이 다대했으며, 방산특례로는 필자를 포함하여 박태호 (전 STX 부사장), 유재문 (충남대 교수), 박병욱 (ADD), 박석두 (개인사업), 김창수 (개인사업), 박종대, 손건호 (개인사업), 손선태 (한진중공업 고문), 이인선 (한진중공업 고문) 등의 번뜩이는 Idea와 헌신적인 노력은 오래 기억되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특히 LSF-I 개발 시, 선체 및 의장설계의 마당발 손건호, 독창적인 추진부양장치 설계의 박석두, 혁신적인 Bow Thruster 개발의 김창수, 그리고 뇌수술의 악몽을 이겨내고 부양 Fan 개발의 박종대에게 마음 깊이 감사드린다. 그리고 LSF-II 개발 시, 박판 알루미늄 전문가인 손건호, 기장 및 배관설계 해결사인 손선태, 그리고 기본설계의 숨은 일꾼 이인선의 노고에 감사드린다.
그리고 개발 초창기 Skirt, 부양 송풍기, Propeller Duct등 공기부양선에만 있는 특수 설비를 개발, 제작하기 위해 개발팀 산하에 모형실을 운용하였다. 초창기 모형실 생산책임자인 김종규반장(현 성실공업 사장)도 음지에서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고 Skirt, 부양 송풍기 등을 훌륭히 제작, 시험하였으며 현재까지도 Skirt 전문사로 큰 역할을 하고 있다.

3)  우리나라 최초의 Hovercraft는 ADD에서 발주한 12M급 Hovercraft이며 안흥시험장의 해상사격시험 통제선으로 활용되었다. 당시 발주를 도와준 ADD 진해기계창장 손운택박사과 시종일관 원칙에 입각하여 열정적으로 건조 감독하신 송준태박사께 감사드린다. 당시 국내 기술이 미천하여 위험부담이 많아 걱정하는 필자에게, 손운택박사는 “이렇게 위험부담이 있는 사업은 ADD에서 발주해야 한다. ADD의 “D”는 Development이다.”고 많은 격려를 해주셨다. 이 배가 밀알이 되어 한국의 Hovercraft는 이제 세계적인 강국으로 발돋움 하였다.

4)  군용 Hovercraft를 개발할 수 있는 국가는 현재 미국, 러시아, 한국, 영국, 핀란드 등 5개국에 불과하다. 미국의 경우, 전문 조선소인 TM&LS사는 개발 기능이 위축되어 미해군의 SSC사업은 미해군이 총괄 설계를 수행하며 TM&LS사는 건조만 담당하고 있다. 러시아의 Hovercraft는 매우 투박하며 매사 튼튼으로 최적설계와는 거리가 많아 첨단 군용 Hovercraft로는 부적합하다. 영국은 공기부양선의 원조이나, 과거의 BHC, HCL, HDL, Vosper Thonycraft, Hovermarine 등이 모두 Griffon으로 통합되었으며 소형 상용 Hovercraft 생산에 주력하고 있다. 핀란드는 십수년전, 군용 Hovercraft T-2000를 자체 개발하였지만 후속 활동이 없다.
금번 LSF-II 양산 및 신형 LSF-II 개발은 매우 고무적이며, 한국의 Hovercraft 기술이세계 최고의 기술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현재 개발 진행중인 신형 LSF-II의 성능이 미해군의 SSC를 능가할 것으로 기대하며, 이러할 때 한국은 전세계에서 Hovercraft 최강자로 군림하리라고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