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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il, 2020
[깊이 보는 뉴스 읽기] 유가가 왜 이래요? (1/3)
<글 : LNG 산업 전문가 권효재 이사 jay.kwon7775@gmail.com> 

(최근 국제 유가 폭락으로 업계의 근심이 깊습니다. 3회에 걸쳐서 국제 유가를 둘러싼 각국의 속사정과 큰 그림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작년말 시작된 COVID-19로 인해 전세계가 거의 멈춰 섰습니다. 외출 자제령의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30억명에 이른다고 하고, 이로 인해 전세계 GDP가 역성장 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와중에 사람들의 귀를 의심케 하는 뉴스가 3월 6일 나왔습니다. COVID-19로 각국의 석유 수요가 대폭 줄어들고, 여름이 오기 전에 원유 저장 시설이 포화상태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자 석유 생산 국가들은 상황이 심각함을 직감합니다. 사우디가 주도하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14개 회원국과 러시아가 이끄는 비OPEC 10개국이 3월 4~6일간 산유량 감산 문제로 끝장 회의를 했지만, 합의에 실패했습니다. 그러면서 사우디는 대대적인 증산을 선언하고, 증산의 칼끝을 러시아에게 겨누었습니다. 이 충격적인 뉴스로 인해 유가는 3일만에 반토막이 나고, 2002년 이후 보지 못했던 배럴당 20달러 선까지 추락했습니다. 도대체 유가가 왜 이런 걸까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던 걸까요? 앞으로 유가는 언제, 어떤 과정을 거쳐서 회복될까요?

연말, 연초가 되면 국내외 경제연구소들은 전망자료를 내놓습니다. 세계 경제성장률부터 각종 산업의 구체적인 수치들까지 여러 자료가 나옵니다. 그 중 조선해양업계에서 주목하는 건 유가 전망입니다. 유가가 중요한 이유는 선박을 발주하는 선주사 중 직간접적으로 오일가스산업에 관련된 회사가 많기 때문입니다. 석유 회사가 돈을 잘 벌면 그 여파로 해운사도, 조선사도 돈을 잘 벌 수 있습니다. 유가가 받쳐주어야 장기적으로 선박도, 해양플랜트도 꾸준히 발주됩니다. 유가는 국내 조선3사를 포함한 오일가스 설비 업체, 엔지니어링 업체들의 주가와 밀접한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2015년 세계 유가가 급락한 적이 있었습니다. 중국의 가파른 경제성장으로 2005년부터 시작된 고유가 기조는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잠시 꺾였었지만, 2010년 하반기부터 다시 회복되었습니다. 대규모 투기 자금까지 들어오면서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한 유가는 좀처럼 떨어지질 않았습니다. 고유가 덕에 이 시기 해양플랜트 발주는 급증했습니다. 100억 달러 이상의 해양플랜트 수주가 이어지고, 고유가는 영원할 것 같았습니다.

이런 고유가 기조는 2015년 갑자기 바뀌게 됩니다. 조용히 하지만 강력하게 물 밑에서 진행된 수급 구조의 변화가 원인이었습니다. 수요와 공급 측면 모두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세계 1위의 원유 수입국에서 어느날 갑자기 석유가 다시 펑펑 쏟아져 나온다는 만화같은 일이 실제로 발생했습니다. 소위 셰일 혁명으로 세계 1위의 원유 수입국이었던 미국이 점점 수입량을 줄여나가면서 심지어 2019년부터는 원유를 수출하게 되었습니다. 미국으로 가는 원유가 줄어들자, 판로를 잃은 물량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고, 시장이 혼탁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고유가로 인해 넘치는 돈을 바탕으로 방대한 재정 사업을 계획했던 산유국들은 곤란한 상황에 처했습니다. 새로운 경쟁자들을 차단해서 시장을 지킬 것을 결심한 OPEC과 그 수장인 사우디는 미국의 군소 셰일 오일 업체들과 가격 전쟁을 시작합니다. 그 결과 2015년초 70달러 수준이던 국제 유가는 1년만에 30달러까지 떨어집니다.

하지만 이 ‘1차 원유대전’은 OPEC 연합군의 패배로 끝납니다. 미국 셰일 오일 업체들이 생각보다 맷집이 좋았습니다. 1차 원유대전 직전만 해도 셰일 오일 업체들의 손익분기점이 되는 유가가 60달러 수준이라고 알려져 있었지만, 막상 유가가 폭락하자 지출도 줄이고, 생산성이 떨어지는 광구는 가동을 중단하는 등 각종 자구책을 동원해서 원가를 40달러 이하까지 낮추었습니다. 그리고, 1차 원유대전이 끝나면 유가가 반등할 것이고, 그럼 큰 이익을 낼 수 있다고 본 투자자들은 셰일 오일 업체에 자금을 무제한 공급했습니다. 셰일 오일 개발 시기부터 수익을 내지는 못했지만, 외형이 급속도로 커지는 회사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 때도 셰일 오일 업체들의 회사채는 고이율-고위험 채권이었습니다. 이런 회사채를 영어로는 High yield bond, 우리말로는 “투기등급 채권”이라고 합니다. 이런 회사채가 불티나게 팔리면서 막대한 자금이 유입되자 셰일 오일 업체들은 예상과 달리 잘 버텨나갔습니다.
 

 

결국 OPEC과 사우디는 1년만에 백기를 듭니다. 목적은 달성하지 못했고, 유가 하락으로 돈을 많이 잃었습니다. 전쟁은 시작하면 반드시 이겨야 하는게 철칙입니다. 손자병법에도 싸우지 않고 이기는게 최상책이지만, 일단 싸우게 되면 반드시 이겨야 하는게 전쟁이라고 합니다. 전쟁에서 지고, 재정수입이 절반 이하로 떨어지자 그 후폭풍은 생각보다 심각했습니다. 주머니가 깊은 사우디는 그런대로 버티었지만 러시아, 이란, 베네수엘라 등 타 산유국들은 극심한 후폭풍을 겪게 됩니다. 베네수엘라는 정권이 무너지고 국가 전체가 아사 상태에 빠졌고, 러시아와 이란도 경제제재를 받아 국민들의 생활고가 가중되었습니다. 사우디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사우디는 특이한 나라입니다. ‘사우드 왕가가 아라비아에 세운 이슬람 왕국’ 이라는 뜻의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은 20세기에 세워진 절대왕정 국가여서 왕가가 국가를 지배하고 의회민주주의가 매우 약합니다. 경제적으로 원유판매에 의존하고, 제조업 기반이 약합니다. 그래서 2천만 국민들에게 고루 일자리가 돌아가지 못해 청년 실업률은 높고 왕족 등 특권층과의 빈부 격차는 큽니다. 이슬람 율법을 극단적으로 해석하다 보니 여성의 권리가 억압받아 여성들은 혼자 운전도 못하는 나라입니다. 자연히 청년층, 여성들의 불만이 높습니다. 국가의 정치적, 경제적 기초가 약하고 국민의 다수가 정부에 대해 깊은 불만이 있으니, 국가의 존립 기반이 튼튼하질 못합니다.

사우디 왕가도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기에 각종 수당, 쿠폰, 선심성 프로젝트를 통해 국민들의 불만을 잠재우려고 하며 많은 재정을 투입하고 있습니다. 이런 재정 수요를 고려하면 사우디는 80달러 이상의 고유가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사우디는100달러 이상의 유가를 원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유가가 너무 높아지면 한계 유전 개발이 계속되고, 부유한 선진국을 중심으로 재생에너지 개발이 본격화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현상은 장기적으로 수요층 약화시켜서 나중에는 석유를 살 사람이 없어지게 되는 큰 문제가 됩니다. 가격이 비싸면 단기적으로 이익을 거둘 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고객이 이탈하므로 길게 보면 손해라고 판단한 사우디는 유가를 60~80달러 수준에서 관리하고자 했습니다. 사우디가 2015년 1차 원유대전을 일으킨 것은 유가 관리를 위해 꼭 필요한 핵심 고객 미국을 붙잡아 두고, 통제가 안되는 경쟁자들을 박멸하기 위한 도박이었습니다. 국가 수입을 유지하고 정권의 안위를 지켜야 하는 절박함이 근본 원인이었습니다.
 

 

1차 원유대전이 끝난 이후 2018년말까지의 상황은 사우디가 원하는 방향대로 흘러갔습니다. 유가는 꾸준히 올라서 80달러에 도달했습니다. 석유 판매에만 의존해서는 경제 문제에 답이 없다는 것을 절감한 사우디는 제조업, 관광산업 육성을 위한 대규모 프로젝트들을 시작합니다. 국가 지도자부터 30대 젊은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로 바뀝니다. 제조업 기반 조성과 태양광 위주의 재생에너지 발전소 투자를 위해 필요한 막대한 재원은 세계에서 제일 돈을 많이 버는 회사인 사우디 국영석유회사 아람코의 상장을 통해 마련하기로 합니다. 남은 건 안정된 유가와 수요였습니다.

하지만 사우디의 계획은 역풍을 맞습니다. 1차 원유대전 때 살아남은 미국 셰일 오일 업체들에서 시작된 역풍이었습니다. 2015년 유가 폭락으로 큰 위기를 겪었던 업체들은 위기 이후 투자자들에게 강한 압박을 받습니다. 유가가 회복되고 있으니 빨리 생산량을 늘려서, 투자에 대한 보상을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미국 셰일 오일업계를 아람코 같은 한 업체가 통제했다면, 생산량을 조절하면서 유가를 유지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유 시장 경제 체제인 미국에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정반대로 셰일 업체간 끝 모를 증산 경쟁이 벌어졌습니다. 모든 업체들이 증산에 열을 올리는 와중에 상대적으로 생산성이 좋은 Permian Basin 지역에 투자가 집중되었습니다. 그 결과 2019년 7월이 되면 놀랍게도 Permian Basin 한 곳에서만 일일 430만 배럴의 원유 생산을 달성했습니다. 이는 세계 최대 규모인 사우디의 가와르 유전(일일 380만 배럴)을 능가하고 이라크 전체 원유 생산량에 육박하는 수준입니다. 한 마디로 1차 원유대전 이후 미국 셰일 업체들의 기세는 하늘을 찌르게 되었고, 미국의 대중국 원유 수출이 본격화되었습니다.

미국에서 글자 그대로 기름이 쏟아져 나오는 상황이 되자, 수급 균형이 매우 불안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미국이 급격하게 원유 수입을 줄여 나가면서 그나마 미국의 빈 자리를 메꾼 것은 중국이었습니다. 2013년부터 중국의 마이카 시대가 열리면서 일일 원유 수입량에서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가 되었습니다. 이제 1970년 이후 굳건한 판매자-구매자 관계였던 사우디-미국의 조합이 사우디-중국의 조합으로 바뀌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사우디-중국의 조합은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2018년초부터 트럼프 대통령이 시작한 중국과의 무역 전쟁으로 중국의 수출 공장들의 가동률이 떨어지고 중국 경제는 침체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로 인해 중국의 석유 수요 증가세는 둔화되었습니다. 더 나아가서 대미 무역 흑자를 줄이기 위해 중국은 미국에서 농산물과 원유, 가스를 수입하기 시작했습니다. 2018년 하반기부터 중동산 원유에 대한 수급 균형이 급격하게 무너지기 시작했고, 2019년에 다시 유가는 50달러 선으로 추락하게 됩니다.

미국에 대한 사우디의 불만은 또 있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막바지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은 사우디 국왕을 따로 만납니다. 그곳에서 양국은 중요한 거래를 합니다. 전략물자인 석유를 미국의 입맛에 맡게 세계 시장에 공급하는 대신 미국이 사우디의 안보를 지켜주기로 한 것입니다. 이후 수 차례 중동전쟁에서 사우디는 미국의 의도대로 움직여 주었습니다. 또한 사우디는 1972년 달러화 위기 때에도 석유 거래를 달러로만 하겠다는 오일달러 선언을 해서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를 지켜주었습니다. 미국은 그 대가로 페르시아만에 함대를 파견해서 사우디를 지켜주었고, 1980년 이란 혁명 이후 미국이 사우디를 보호하고, 사우디는 대신 미국에게 석유를 공급하는 공생 관계는 강화되었습니다. 이러한 동맹관계를 근본부터 흔든 건 트럼프 대통령이었습니다. 셰일 오일로 미국의 석유 자립이 가능해지자, 미국은 중동에 파견했던 군의 규모를 축소하고 지역 분쟁 개입을 꺼리게 됩니다. 오바마 정부 때는 서로 힘을 합쳐 IS와 싸웠지만, 막상 IS가 패퇴하자 미군은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철군을 하고, 그 힘의 공백은 고스란히 이란과 러시아가 차지하게 됩니다. 사우디로서는 좌시 할 수 없는 안보 공백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사우디도 미군에게 국방을 다 맡긴 것은 아니었습니다. 중동 역내 어떤 나라보다도 첨단 무기를 많이 구매했고, 국방력 강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2020년 기준 사우디의 국방비 지출 규모 676억 달러로 미국과 중국에 이어 세계 3위 수준으로 인도와 영국보다 많이 쓰고 있습니다. 자주국방을 위해 힘을 쏟은 사우디는 가상 적국 이란과의 전쟁에 대비한 모의고사를 2015년부터 치르게 됩니다. 이웃 나라인 예멘에서 시아파 세력인 후티 반군이 세를 얻자 사우디가 돌연 개입한 것입니다. 5년 동안 압도적인 공군력을 바탕으로 사우디는 총공세를 펼쳤지만, 결과는 실망스러웠습니다. 별다른 무장도 없는 후티 반군에게 사우디 군은 연전연패를 거듭하고 심지어 국경선 방어까지 위태롭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사우디 집권층에게 큰 근심을 가져왔습니다. 만약 정말로 셰일 오일로 미국이 석유 자립을 완전히 이룩하게 되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요? 전략적 중요성이 현저하게 떨어진 중동에 미해군과 육군을 비싼 돈을 들여서 주둔시킬 필요가 없어집니다. 이들이 모두 철군하면 사우디는 가상 적국 이란으로부터 자국을 지킬 수 있을까요? 미군이 중동에서 사라지면, 사우디가 그 동안 석유로 쌓아 올린 부가 한 순간에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사우디에게 미국의 석유 자립은 단순한 돈 문제가 아니게 되었습니다. 미국이 빠진 자리를 중국이 메워 줄 수는 없는 상황에서 이란과 그 배후의 러시아가 중동으로 밀고 내려오는 상황에서 사우디는 미군을 붙잡아 두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려면 미국에게 사우디의 석유가 가지고 있는 전략적 중요성을 극대화해야 합니다. 좀 더 직접적으로 말하면, 제 2차 원유전쟁이 필요하게 된 것입니다.

1차 원유전쟁은 재정 지출을 감당하기 위해 유가를 조절하기 위한 목적이었다면, 2차 원유전쟁은 사우디가 가지고 있는 힘을 과시하고 1차 원유전쟁 때 정리하지 못한 셰일 오일 생산 업체들을 파산시키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런데, 사우디가 2차 원유 전쟁을 하면서 겨냥한 경쟁국은 미국 하나 만이 아닙니다. 미국과 러시아 두 곳 모두를 겨냥한 전쟁입니다.

사우디에게 미국은 안보상 우방이지만, 경제적으로는 경쟁관계입니다. 그럼 사우디에게 러시아는 어떤 나라일까요? 러시아는 안보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경쟁관계입니다. 왜 러시아와 사우디는 이런 관계가 되었을까요? 2편에서 다루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