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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ober, 2020
[산업현장이야기] 패들링에서 시작하는 우리 해양문화의 건설

<글 : 서울대학교 체육교육과 강사 / (사)태안해양문화진흥원 이사장 박금수 gspark1871@daum.net>

인간이 처음으로 사용한 배는 혼자 겨우 탈 수 있는 1인용에 무동력이었을 것이다. 우연히 통나무에 올라타 손으로 저으면 강이나 호수를 건널 수 있음에 전율을 느꼈을 것이다. 이것을 이용하면 이전에는 한참을 거슬러 올라가야 건널 수 있던 강을 손쉽게 넘어 아무도 손대지 않은 신선한 땅에서 신나게 채집과 사냥을 할 수 있음에 아주 신이 났을 것이다. 또 우연히 이를 본 다른 부족 사람들은 잠시 충격에 빠져 있다가, 곧바로 서로 앞 다투어 머리를 굴리며 점점 더 많은 사람을 태우고 멀리 갈 수 있는 배와 노를 개발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이로써 인간은 더 넓은 땅의 영역을 점령해 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바람과 파도가 으르렁대는 바다는 역부족이었다. 파도가 잔잔한 날에도 아직은 이해할 수 없는 바닷물의 흐름이 육지로부터 멀리 던져버려 돌아오지 못한 이들도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 인류가 자연에서 섬유를 뽑아내고, 이를 이용하여 천을 만들어 옷을 걸쳐 입을 수 있을 즈음에 또 누군가가 돛으로 바람의 힘을 이용하여 빠르고 멀리 갈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심지어는 바람을 거슬러 올라가는 법도 알아낸다. 이제 인간은 육지 위의 길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바다를 통해서도 지구 곳곳으로 빠르게 퍼져나간다.

그렇게 또 오랜 세월이 흘러 이제 지구에 인간이 살지 않는 땅이 거의 없어져가고 다양한 문명들이 서로 각을 세우고 대립할 때, 저 멀리 4대 문명의 발상지와는 거리가 좀 멀었던 서유럽 사람들이 바닷길에 목숨을 걸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다. 동서양을 잇는 가장 중요한 관문이었던 콘스탄티노플이 오스만제국에 의해 함락되었다. 실크로드와 지중해 항로가 모두 끊긴 것이다. 이미 커져버린 유럽 경제권의 욕망은 동양과의 교역에 심한 갈증을 냈고, 이를 새로운 비즈니스의 기회로 인식한 모험가들은 왕실과 귀족들의 후원을 받아 아프리카 최남단의 희망봉을 돌아 인도에 갈 수 있는 해상교역로를 개척해낸다. 거친 대서양과 인도양의 파도를 받아내며 무역풍과 계절풍을 이용할 수 있는 항해술을 발전시켰고, 대서양을 횡단하여 신대륙을 발견하기에 이른다.

이렇게 대서양을 통한 무역의 양과 질이 급격히 상승하자 또 하나의 파생 비즈니스가 덩달아 발달했는데, 그것은 바로 ‘해적질’이었다. 해적질에 가장 능한 나라는 영국이었다. 리아스식 해안과 좁고 거친 해협을 누비며 발달한 영국 사람들의 항해술은 ‘치고 빠지는’ 해적질에 최적이었다. 그렇게 대서양의 제해권을 넓혀가던 영국은 마침내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파하며 ‘해가지지 않는 대영제국’을 건설할 수 있는 전략적 우위를 점하게 되었다.

전 세계로 뻗어가던 영국의 해안에 어느 날 아주 작은 날렵한 배가 한 척 밀려온다. 그 안에는 그린란드 에스키모인이 죽은 채 타고 있었는데 손에는 양쪽으로 젓는 패들(paddle, 노)이 쥐어져 있었다. 그 배는 바다표범의 가죽과 동물 뼈로 만든 ‘카약(kayak)’이었다. 에스키모인들은 아주 오랜 세월동안 이 카약을 타고 사냥을 하며 살아왔다. 카약은 하반신을 선체에 넣고 스커트로 밀봉하여 전복이 되어도 선내에 물이 들어가지 않는다. 그리고 ‘에스키모 롤(roll)’이라는 기술을 익히면 전복 상태에서 다시 배를 돌려놓을 수 있다. 그린란드 에스키모들은 이 카약을 타고 바다표범에 접근하여 줄에 묶은 작살을 던진다. 작살에 맞은 바다표범이 도망가려 몸부림치면 카약이 딸려가며 뒤집어지기도 하는데, 이 때 에스키모 롤 기술은 에스키모인들이 목숨을 지키는 수단이었다. 거친 바다로 둘러싸인 영국인들은 이 카약이 마음에 들었던지 전 국민이 사랑하는 스포츠로 발전시켰다. 그리고 자신들의 체형과 바다에 맞게 선형을 개조하고 소재 또한 나무에서 시작하여 폴리에틸렌(PE), 강화유리섬유(FRP), 심지어는 카본(Carbon) 섬유로 제조하여 한 손으로도 들 수 있는 고급 카약이 생산되고 전 세계에 팔리고 있다.  

대서양을 건너 간 유럽인들은 오늘날 캐나다 지역에서 원주민들이 타고 다니던 위가 트인 ‘카누(canoe)를 발견한다. 카누는 한쪽으로 노를 저으며 주로 강을 타고 다니는데, 캐나다 지역에는 전체 길이가 약 3000km가 넘는 유콘 강 같은 길고 긴 강들이 있다. 서부 골드러시 시절 이 유콘 강을 통해 금광에서 채굴된 금이 운반되었다. 유럽 침략자들의 황금 빛 욕망을 운반하던 이 강에는 이제 카누를 타고 1000km를 종주에 도전하는 ’The Yukon 1000‘가 열리고 있을 정도로 카누는 사랑받는 스포츠로 발전했다.

카약과 카누는 세계카누연맹(International Canoe Federation)이 결성되며 ‘카누(canoe)’가 대표 종목명이 되었다. 그래서 영국에서 발달한 카약을 ‘카약 카누’, 북미에서 발달한 카누를 ‘캐너디언 카누’라 부르기도 한다. 카누는 유럽들이 시작한 현대 올림픽에서 주요 종목으로 채택되었으며 메달 수도 상당하다.

태평양 한복판 하와이 해변에서는 또 다른 해양레저스포츠가 발전하고 있었다. 하와이 원주민들은 아주 오래 전부터 전통적인 서핑을 해왔는데, 이를 발견한 서구인들이 20세기 들어 서핑보드를 개발하며 현대적인 스포츠로 발전시켰다. 최근에는 패들보드 또는 SUP(Stand Up Paddleboard)이 부르는 종목이 최근 10년 동안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스포츠로 꼽히고 있는데, 이것은 서핑보드보다 길고 볼륨이 큰 보드 위에 서서 외날로 된 긴 패들을 저으며 이동하는 것이다. SUP의 시작은 보드에 엎드린 채 파도를 기다리는 서퍼들을 위해 보드 위에 서서 멀리서 오는 파도를 보고 신호를 주던 것이라 한다.

그래서인지, 국제서핑협회(ISA)는 최근까지 SUP에 대한 독점적인 권리를 주장해왔다. 하지만 서서 노를 젓거나 삿대질을 하는 전통적인 방식은 세계 곳곳에서 발견되며, 패들링(paddling)을 한다는 점에서는 넓은 의미의 카누에 속한다고도 볼 수 있다. 국제서핑협회와 국제카누연맹(ICF) 사이의 분쟁은 최근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ourt of Arbitration for Sports)에서 결론이 났다. 두 단체 모두 SUP를 발전시킬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이제 분쟁이 해결됨으로써 SUP가 올림픽 종목에 들어가는 것은 시간문제가 되었다.

이렇게 카약, 카누, SUP 등의 ‘패들링 스포츠’는 본래 그린란드, 북미, 하와이의 원주민들의 전통적인 배를 발견하고 흥미를 느낀 서구인들에 의해 현대적인 스포츠로 발전되었다. 대형 범선과 증기선을 타고 대양을 가로지르던 그들이 원주민들이 타던 작은 배에 흥미를 느낀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점점 대형화 되는 선박에서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하나의 선원이 아니라 자기 근육의 힘으로 강과 바다를 누비는 개인적인 자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어서가 아니었을까. 그렇게 시작된 서구인들의 패들링 스포츠 문화는 세일링(sailing) 스포츠와 함께 대항해시대 이후 바다를 통해 전 세계의 패권을 쟁취한 자신들의 역사를 다시 음미하고 그 문화를 자연스럽게 후세에 전달하고 있는 것 같다.

이에 비해 아시아권의 패들링 문화는 매우 저조하다. 서구의 영향을 일찍 접하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일본과 영국의 조차지였던 홍콩 등에서 어느 정도 발달한 정도이다. 우리나라 한강에서 카약을 타고 있으면 사람들은 ‘여기서 이런 거 타도 되요?’라고 묻는다. 반면에 필자는 일본 남서부 오지에 카약을 타러 간 적이 있는데 시골의 작은 라멘집의 사장도 카약을 어디서 띄워야 하는 지 알려줄 정도이다.

여기까지 읽으면 마치 필자가 서구의 해양문화를 찬양하는 것 같이 느껴지겠지만, 그런 것은 전혀 아니다. 다만, 현재의 스포츠 문화는 그 나라의 역사적 발자취를 반영한다는 점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서구에 비해 식민의 역사를 겪은 많은 아시아 국가들의 해양문화 발달은 매우 저조하다.

하지만 우리나라 해양의 역사는 깊고 우수하다. 삼면이 바다에 둘러싸인 반도에 자리 잡은 우리 민족은 백제, 신라 시절부터 바다를 통해 교역과 외교를 수행해왔으며, 고려시대에는 ‘코리아’라는 이름을 유럽에까지 알렸고, 조선시대에는 누구나 자랑스러워하는 거북선과 판옥선을 실전에 투입해서 왜구를 소탕하고 임진년 왜적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지켰다. 게다가 지금은 세계적인 조선 강국이 아닌가.

하지만 근대를 식민지로서 맞이한 역사적 불행은 자랑스러운 우리의 해양 역사가 ‘해양문화’로 자리 잡는 것을 단절시켰다. 우리나라 해양문화의 부재가 가장 직접적으로 느껴질 때는 사람들이 ‘여기서 이런 거 타도 되나요?’라는 질문을 할 때이다. 수상레저안전법에서 규정하는, 얼마 되지 않는 수상레저금지구역 외에 삼면의 바다, 수많은 강과 호수에서 카약, 카누를 타는 것은 자유이다. 육지로부터의 거리가 10해리가 넘는 섬에도 원거리수상레저신고만 하면 얼마든지 카약으로 다녀올 수 있다. 필자는 올해 여름 46명의 패들러들을 이끌고 서해 끝에 위치한 왕복 120km가 넘는 격렬비열도를 2박 3일에 걸쳐 다녀왔다. 물론 철저한 안전장비와 체력, 기술, 그리고 가장 중요한 동료가 있어야 한다.

최근 우리나라의 수상레저, 해양스포츠 발전정책의 포커스는 동력 보트와 중대형 요트에 집중되어있다. 물론 이쪽이 카약, 카누보다는 산업유발효과가 큰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거기에만 집중해서는 수요를 창출하는 근본적인 힘인 해양문화를 발전시키기 어렵다. 개인이 레저스포츠에 자신의 시간과 자본을 투자하기 위해서는 그 스포츠 문화권에 들어가 몰입이 되어야 자연스럽게 강력한 동기가 생겨난다.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에서 대형보트를 소유하거나 크루를 모아 요트를 운영할 수 있는 자본과 시간의 여유가 있는 사람은 소수이다.

이에 비해 카약, 카누, SUP 등의 패들링 장비는 개인이 구비하기에 큰 부담이 없을 정도이다. 패들링을 통해 우리나라의 강과 호수, 바다와 섬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해양문화의 수준은 높아져 갈 것이다. 그러다보면 요트를 타고 세계일주를 하는 꿈에 가까워지는 사람들 또한 늘어날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패들링 동호인의 장비는 전량 수입품에 의존하고 있다. 올림픽에서 촌각을 다투는 엘리트 선수들도 유럽인의 체형을 기준으로 제작된 배를 타고 출전한다. 세계적인 조선 강국인 우리나라에서 아시아인의 체형에 적합한 카약과 카누를 디자인하고 제작하는 것은 어떨까. 매출량은 아직 대형 화물선, 특수선보다는 못하겠지만 아시아권의 경제와 문화가 발달할수록 그 시장은 꽤 커지지 않을까.

끝으로 조선공학도 여러분께 취미 삼아 카약을 꼭 타보시기를 권해본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카약을 5대 정도 가지고 있는데, 길이와 폭, 헐(hull)과 로커(rocker)에 따라 그 용도가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먼 바다에서 너울(swell)을 잡아타는 서프스키(surfski), 섬으로 카약 캠핑을 갈 수 있는 장거리용 투어링 카약, 거친 바다 또는 해변에서 파도(wave)를 타는 용도인 씨카약(sea kayak) 등, 각기 스펙에 따른 배의 특성을 몸으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지구의 강과 바다를 사랑하는 마음과 옆에서 함께 서로의 안전을 책임져주는 동료와의 깊은 유대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