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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il, 2021
[조선인이 쓰는 조선 이야기] 일본, 한국, 중국 그 다음은 어디?

<글 : 대우조선해양 이종무 책임 jongmoolee@dsme.co.kr>


가끔 높은 곳에 서서 야드 너머 경관을 바라보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정말 리조트를 지어도 좋을 거 같은 풍경이네...'

그렇습니다. 조선소는 대체로 풍광이 정말 아름다운 곳에 있습니다. 대부분 자연 방파제가 잘 조성되어 있는 바닷가 만(Bay)에 위치해있고 앞에는 멀찍이 섬 한 두 개 정도가 아련히 보입니다. 파도는 사계절 잔잔하여 햇빛에 반짝이는 거울과 같은 앞바다는 호수를 보는 듯합니다. 날씨도 온화하여 서울에서 한파 소식이 들려도 대부분 영상의 날씨, 여름에는 좀 덥긴 하지만 도시처럼 짜증스럽지는 않은 편입니다.
 

 
<거제도의 양대 조선소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전경 (출처,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왠 갑자기 경치, 날씨 타령이냐고요? 오늘의 주제와 매우 밀접한 내용이라 그렇습니다.

저는 직업상 정기적으로 경쟁사, 경쟁국 동향을 파악해 보아야 합니다. 너무나도 치열한 국내 경쟁도 괴롭지만, '아직은 멀었겠거니' 안심하고 있다가 불쑥 눈 앞에 다가와 있는 경쟁국 조선소의 소식에는 더욱 공포감을 느낍니다. '이번에 OOO 컨테이너선 입찰에서 결국 중국이 몇 척을 가져갔다네...', '이번 XXX 해양 프로젝트를 싱가포르가 가져갈 줄은 몰랐구먼...' 가끔 있는 일이고 전체 볼륨으로 보면 그리 대단하지는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경영진은 바싹 긴장하게 마련이고, 경쟁국 조선소의 전체적인 상황 파악은 필수가 됩니다.

언젠가도 그렇게 경쟁국 조선소들의 조사를 진행하고 있던 저는 갑자기 어처구니없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도대체 그 조선소들이 어디에 붙어 있는지도 모른다는 것을 깨달은 겁니다. '와, 너무했네 진짜...'

그래서 급한 대로 일단 중국의 주요 상위 조선소 50개, 일본의 주요 조선소 30개를 추려서 소재지를 조사하고 세계 지도 위에 건조량 기준으로 물방울 그래프를 그려보았습니다. 결과는 너무도 흥미로웠습니다. "이렇게 가까이 있다고?"
 

 
<[좌] 중국 Top Ranking 조선소 분포(중앙 아래가 상해 클러스터), [우] 일본 Top Ranking 조선소 분포 (우측이 세토 내해 클러스터)>


중국의 주요 조선소들은 장강(양쯔강) 삼각주에 위치한 상해(Shanghai)를 중심으로 한 반경 200km 안에 대거 포진해 있었습니다. 중국 조선 산업은 전통적으로 북쪽의 대련(Dalian), 그리고 남쪽의 상해 이렇게 양분되어 발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최근에는 북쪽 대련은 방위산업 위주로 발전해가고 일반 상업 선박은 남쪽의 상해 근처로 경쟁력이 편중되는 것 같습니다.

일본도 혼슈, 시코쿠, 규슈 3개의 섬에 둘러싸여 마치 호수와 같은 천혜의 자연조건을 가지고 있는 '세토 내해(Seto Inland Sea)'의 조선해양 클러스터가 계속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중국의 상해 클러스터와 일본의 세토 내해 클러스터를 직선으로 연결 후 이를 지름으로 한 원을 그려보았습니다. 그러자, 중심이 '제주도 서귀포' 근처인 반경 600km의 원이 그려집니다. 이 원안에는 한국의 울산, 부산, 경남, 전남 지역의 조선소와 중국의 상해 및 저장성(Zhejiang) 및 강소성(Jiangsu)의 대표 조선소, 그리고 일본의 주요 조선소가 거의 모두 포함이 됩니다. 전 세계의 8~90% 이상의 선박 건조를 책임지는 조선소들이 제주도를 중심으로 한 반경 600km의 원안에 대부분 있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으십니까?

이후 저는 각국 및 세계 통계 자료를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모은 통계는 각 지역의 월별 기온과 강수량에 대한 자료였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당연한 결론이겠지만 비교적 가까운 거리 안에 있는 한중일 주요 조선 도시의 기온, 강수량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상해가 부산보다는 연평균 기온이 더 높고, 세토 내해 쪽이 부산보다 강수량이 좀 많다 이런 정도였습니다.

조선업은 기후의 뒷받침이 없이는 경쟁력을 갖기 어려운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배를 건조하는 과정 중에 필연적으로 자연과 맞닥뜨려야 하는 외업(Outdoor) 공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왜 전체 공장에 지붕을 씌워 옥내화를 하지 않냐고요?

한국 대형 조선소들이 주로 짓는 선종은 길이가 300m를 훌쩍 넘는 선박들입니다 폭과 높이까지 따지자면 정말 엄청난 크기의 철 구조물(Steel Structure)입니다. 국내 최고층 롯데월드 타워가 555미터이고 2위인 부산 엘시티 더샵이 411m, 3위인 여의도 파크원 타워가 338m 정도가 된다고 하니 배를 수직으로 세운다면 한국에서 3위나 4위권 건물이 될 수 있겠습니다. (참고로 63 빌딩은 249m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당연히 이 큰 건축물을 옥내(Indoor) 작업장에서 짓기는 불가능합니다. 시설 건축비와 유지비용이 천문학적으로 들게 되니깐요. 결국 배의 최종 건조 단계에서는 옥외 공정을 반드시 거쳐야 합니다.

옥외 공정은 당연히 기온, 강수량, 바람의 영향을 받습니다. 조선의 주요 작업은 용접과 도장인데, 용접은 온도가 너무 높으면 작업효율이 안 나고, 온도가 너무 낮으면 품질 불량이 납니다. 또한 비가 온다면 품질 및 사고 위험 때문에 작업이 불가능해집니다. 또한 도장 작업은 말 그대로 페인트 칠인데, 전처리와 수 차례의 반복(덧칠) 도장 공정마다 품질관리를 위해 습도를 철저하게 통제해야 합니다. 그나마 블록의 도장은 환경문제 때문에 주로 엄격하게 관리되는 옥내 작업장에서 작업을 합니다. 그러나 이때에도 습도가 높으면 품질 불량이 나기 때문에 날씨가 궂은 날이면 제습기를 '빵빵하게' 틀어놓고 습도를 낮춰 작업을 해야 합니다. 온도가 낮은 날에도 페인트 작업이 안되는데 그때는 전기 히터를 틀어놓고 온도를 올려 작업을 해야 합니다. 제습기와 히터는 '전기 먹는 하마'입니다. 작업 효율이 떨어지고 비용이 크게 증가합니다. 게다가 탑재나 의장 후 마무리 도장과 같이 옥외에서 꼭 해야 하는 페인팅 작업은 습도가 높거나 비가 오면 작업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옥외 작업은 바람의 영향도 큽니다. 바람이 많이 부는 곳에서의 용접 작업은 품질 불량을 일으키게 됩니다. 또한 옥외 도장 스프레이 작업을 할 때 바람이 세면, 페인트를 날려 품질 불량, 원가 낭비 문제뿐 아니라 환경오염까지 일으킬 수 있습니다. 더 중요한 문제는 바람이 너무 세게 불면 크레인을 못써 탑재 작업이 불가능해진다는 것입니다. 수백수천 톤 되는 블록을 옮기는데 바람이 불어 그 무거운 블록이 그네처럼 출렁거린다면 어떨까요? 생각만 해도 아찔해집니다. 만일 바람 때문에 크레인을 못써 Critical Path에 걸린 블록을 제때에 탑재하지 못한다면, 도크 안의 전 공정이 영향을 받습니다. 하루에 수십, 수백억의 매출 손실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결국 옥외(Outdoor) 공정이 필수인 조선 산업은 어쩔 수 없이 온도, 강수량(습도), 바람의 영향을 크게 받을 수밖에 없고, 자연조건에 따라 경쟁력은 큰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앞서 중국의 양대 조선소가 북쪽의 대련, 남쪽의 상해 두 군데서 발전하다가 상해 쪽으로 중심추가 기우는 것 같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저는 그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가 '기후 조건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대련은 수도 북경으로 들어가는 입구인 발해만을 지키는 중국의 군사, 전략적 요충지입니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해군력을 키우기 위한 조선소가 오래 전부터 발달되어 있었고 그 안에 숙련된 엔지니어들을 많이 양성해 놓았습니다. 엔지니어들의 역량이 훌륭하니 군함뿐 아니라 일반 선박도 매우 훌륭하게 건조할 수 있었고, 그렇게 명실상부한 중국의 2대 조선소 중 하나로 이름을 알려왔습니다. 그런데 대련은 겨울에 바다가 얼 정도로 혹한의 추위가 있는 곳입니다. 이곳에서 선박을 건조하다 보면, 툭하면 영하 10도 이하로 내려가는 날씨와 폭설 등으로 선박을 건조하는데 많은 애로사항이 생기게 됩니다. 시절이 좋을 때는 큰 문제가 안되었겠지만, 시황이 어려운 지금 같은 때에는 일 년 내내 높은 생산성을 유지할 수 있는 조선소와 경쟁을 하기에는 매우 버거운 '핸디캡'이 되는 것 같습니다.  
 

<대련 앞바다가 얼어 고립된 수백 척의 어선 (출처: Ecns.cn)>


온도, 습도, 바람 외에도 조선업을 하기 위해 자연의 힘을 빌려야 하는 것이 또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배를 건조하기에 적합한 안벽(Quay) 수심과 자연 방파제의 존재입니다.

조선소에서 배가 건조될 때 앞서 설명한 대로 '탑재(Erection)' 과정을 거쳐 모양이 완성된 선박을 '진수(Launching)' 과정을 통해 배를 바다에 띄워놓고 최종 작업을 마무리하게 됩니다. 그 후 '해상 시운전(Sea Trial)' 등의 테스트를 거쳐 고객에게 배를 인도합니다. 배는 당연히 물 위를 다니는 운송수단이기 때문에 육상에서의 테스트에 한계가 있고, 물 위에서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있는지 테스트를 제대로 해봐야 합니다. 이 과정을 '안벽(Quay)'이라고 하는 일종의 '배를 묶어 놓는 부두'에서 진행합니다.

선박을 완성하기 전의 배는 신생아와 같습니다. 아기는 사람의 모습은 갖추고 있지만 작은 외부의 충격이나 병균에도 치명적인 손상을 입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침대에 펜스도 설치하고 부드러운 쿠션들을 놓아 밤낮으로 조심스레 살피는 것처럼, 진수한 선박도 가장 안전한 장소에 계류하여 정상적인 기능을 할 때까지 잘 보호를 해야 합니다. 그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안벽과 방파제입니다. 특히 방파제는 일상적인 파도뿐 아니라, 가끔씩 오는 너울(스웰)도 막아야 하고, 여름~초가을에는 태풍도 막아주는 역할을 해야 하는 매우 중요한 인프라입니다.
 

<잘 조성된 방파제와 방파제 안쪽 안벽에 계류, 건조되고 있는 각종 선박 및 해양플랜트 (출처: 대우조선해양)>


제가 서두에 '멀리 섬이 한두 개씩 보인다, 마치 호수 같다'라고 하였지요? 그냥 경치 자랑을 하고자 한 말이 아닙니다. 온도, 비, 바람뿐 아니라 자연 방파제와 안벽 수심 등 '조선에 적합한 자연조건'이라는 것이 분명 존재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조선소의 경쟁력을 좌지우지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조선 산업은 정말 '신의 축복'이 없이는 불가능한 산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조선소의 입지 조건 중 '천혜의 자연조건' 못지않게 중요한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후방산업의 성숙도'입니다. 달리 말해 '그 나라의 제조, 기반 산업의 발전 정도'입니다. 그 이유는 조선 산업이 '종합 조립 산업'의 특성을 갖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주로 잘 짓는 선박은 대표적으로 대형 가스선, 초대형 컨테이너선, 초대형 원유 운반선 등인데, 보통 앞쪽에 '대형 아니면 초대형'이라는 수식어가 붙습니다. 이 중 VLCC라 칭하는 '초대형 원유 운반선'의 경우, 길이는 300 미터를 훌쩍 넘고 폭과 높이는 대략 60m, 30m 정도 됩니다. 그럼 무게는 어느 정도 될까요? 배의 자체 무게만 해도 4만 톤이 넘습니다.

한국의 대형 조선소에서는 이런 엄청난 중량의 배들을 1년에 수십척씩 건조합니다. 이 배를 만드는 재료는 어디서 날까요? 조선소는 '조립 및 완성'이 주 임무이므로 심하게 말하면 '볼트 하나 너트 하나까지도' 다 밖에서 사 가지고 와야 합니다. 그러니 결국 1년에 100만 톤이 넘는 재료들을 조선소로 이동 시켜 와야 합니다. 이 물류비는 어떻게 계산될까요? 네 맞습니다. 보통 중량 혹은 개수 기준 운송비를 계산하여 재료비에 넣어서 지불을 합니다. 거리가 멀어지면요? 당연히 비용이 증가합니다.

배를 만드는데 가장 많이 쓰는 자재는 앞서 말씀 드린 대로 바로 '후판(두꺼운 판)'이라고 불리는 철판입니다. 완성된 선박의 전체 중량 기준 약 8~90%을 차지합니다. 그래서 조선소 입지 요소에서 중요한 하나는 바로 이 '제철소'가 가까운 곳에 있느냐 없느냐가 될 수 있습니다. 거리가 늘어나면 운송비가 비싸지게 되고, 이 추가 비용이 조금만 차이 나더라도 재료비 경쟁력은 급격히 떨어질 수 있습니다.

그냥 제철소만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제철소가 '1급 제철소' 라야 경쟁력이 있습니다. 1급 제철소는 국제 선박 성능 품질 관련 독립 감리 기관인 '선급(Classification Society)'의 인증을 받은 수백 가지 종류의 철판을 조선소의 주문에 따라 맞춤 생산, 공급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또한 항상 원가 압박에 시달리는 조선소에 톤당 단 1달러라도 싸게 공급해야 경쟁력이 있는 제철소입니다. 그래서 원재료인 철광석과 무연탄으로부터 철판을 직접 생산하는 '일관화 프로세스'를 가져야 합니다. 한국에는 이러한 1급 제철소가 2개나 있습니다. 경쟁국인 중국과 일본도 이러한 1급 제철소들이 뒤에 든든히 버티고 있습니다.

중국도 지금은 가장 경쟁력이 있는 제철소 여럿을 보유하고 있지만, 초기엔 선주들이 "중국산 철판을 쓰지 않는 조건으로 발주하겠다'라고 하는 등 수모를 겪었습니다. 엄청난 물량 처리 경험 및 국가적 지원이 없이는 쉽게 들어올 수 없는 시장이 바로 이 '선박용 후판' 시장인 것입니다.

이제 “한중일 다음 조선산업의 패권은 어떤 나라가 가져갈 것인가?”라는 이번 편의 메인 주제에 대하여 본격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후발 주자가 한중일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필수 조건이 필요합니다.

첫 번째 조건은 너무도 당연하게 자국 영토 내에 '바다'가 있어야 합니다. 앞서 말씀 드리다시피 그냥 바다가 아니라 천혜의 조건들이 구비된 그런 '양질의 바다'여야 합니다.

두 번째 조건은 인력의 공급 조건과 인건비적인 강점입니다. 우선 제조업에 유입될 수 있는 일정 규모 이상의 인구가 있어 한 조선소 당 수천 명에서 수만 명에 이르는 현장 직공들의 수급이 보장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연구소부터 생산 현장까지 수십수백 가지 직군의 전문 인력들이 교육받고 훈련될 수 있는 시스템이 존재해야 합니다. 또한 결정적으로 그 인력들이 바라는 임금 수준이 적어도 중국보다는 더 낮아야 합니다.

세 번째 조건은 앞서 강조 드렸던, 후방 산업의 지원 환경입니다. 특히 경쟁력 있는 제철소가 필수입니다.

이 세 가지 필수 조건을 가지고 조사를 해보니 인도, 러시아, 중동의 이란이 '강력한 후보'로 보입니다. (브라질도 있었지만 산업 평균 임금이 이미 중국을 추월하고 있어 후보에서 제외하였습니다.)
 

이제 '신의 영역'으로 가보겠습니다. 조선 산업의 경쟁력을 위한 '신의 축복 3종 세트'인 기온, 강수량, 바람 조건을 따져봐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신의 선물'을 받는 것은 생각보다 너무 어려운 일인 거 같습니다. '세계 기후 분포도' 기준으로 보면 한중일 조선소에 위치한 지역과 비슷한 기후대에 바다를 가진 나라가 생각보다 얼마나 적은지를 깨달을 수 있으실 것입니다. 북반구는 한중일 포함, 미국, 중동 일부 및 서유럽 국가들이 있습니다. 남반구는 남미의 브라질, 우루과이, 오세아니아의 뉴질랜드 북부, 시드니와 캔버라가 있는 오스트레일리아 남동부 일부, 그리고 아프리카의 남쪽 끝단인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전부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조선을 시작하기엔 산업인구의 한계가 있거나 이미 너무 '선진국'입니다.

 

<세계 기후 분포도 (출처: mapsofworld.com)>


앞서 언급한 조선 산업의 '강력한 대안 후보'들의 조건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인도는 신의 선물을 못 받은 것 같습니다. 기후가 사시사철 너무 덥고 습합니다. 바다에 면한 인도의 최북단이 중국의 최남단의 위도와 비슷하니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러시아는 어떨까요? 마찬가지입니다. 너무 춥고 바람이 많이 붑니다. 러시아의 최남단 항구가 바로 북한의 최북단과 맞닿아 있는 '블라디보스토크'이니 그럴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이란은 사막기후인 남쪽 해안가와 달리 수도인 테헤란이 있는 북쪽의 해안은 기후가 한국과 비슷하여 조선을 하기 적합한 조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산업에 종사할 인구도 많으며 아직 임금 수준도 중국보다 낮아 조선 경쟁력을 갖출 가능성이 충분히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이란의 북쪽 바다인 '카스피 해'는 닫힌 바다, 즉 다른 바다로 오고 갈 수 없는 'Closed Sea'입니다. (엄밀하게 얘기하면 다른 바다로 통하는 러시아 운하가 있긴 하지만 최대 통과 가능 폭이 16.8m에 불가하여 일반적인 상선 수출은 불가합니다.)
 

중국의 발전 이후 제조업의 대안으로 여겨지고 있는 동남아의 신흥국들도 살펴보겠습니다. 동남아 국가들은 위의 첫 번째 조건인 '양질의 바다'와 두 번째 조건인 '풍부한 인력과 인건비적 강점'에서 주목받는 국가들입니다. 그러나 나머지 조건이 '아직은' 매우 열악합니다. 특히 세 번째 조건인 제조업 후방산업 기반이 너무 미성숙한 상태입니다. 현재로서는 1급 제철소는커녕 배를 만들기에 필요한 수천 가지의 기본 부품들도 가까운 곳에서 구할 수가 없습니다. 아마도 이들이 조선업을 시작한다면 대부분의 부품을 당분간 경쟁국인 한중일에서 비싼 운송비와 로열티를 줘가며 공급받아야 할 것입니다. 또한 기후조건이 조선 산업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이들도 ‘신의 선물’을 받긴 받았으나, 그것이 조선업을 위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태국의 휴양지 전경 (출처: Six Senses Yao Noi Resort)>


조선 후발국들에게 중국의 존재는 정말 좌절스러울 정도로 높은 '진입 장벽'이 될 것이라 생각이 됩니다. 많은 신흥국들이 조선 산업에 욕심은 나지만 아직 용기를 못 내는 이유도 저는 단연코 '중국의 존재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한국과 일본의 장벽도 만만치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두 나라는 내수 시장의 한계로 수출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천연자원도 부족하고 관광 인프라도 상대적으로 약해 앞으로도 상당기간 계속 수출 제조업에 목숨을 걸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저는 이런 '절박한 조건'이 어떤 나라의 제조업이 발전하는데 필요한 '필수 조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제조업으로 먹고 살 수밖에 없는 나라에서 생존을 위한 필사적인 혁신과 기술개발이 이루어지고 결국 제조 강국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 때문에 저는 오히려 자원 부국이자 엄청난 내수 시장을 가진 중국이 한국, 일본보다 먼저 조선 산업을 떠나게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아니면 해군력 유지와 자국내 필수 운송 물량을 소화하는 수준으로 축소되던지요. 만약 그렇게 된다면 신흥국들에게 조선 산업에 진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는 있겠습니다.

저는 앞으로 세계 기후의 변화가 어떻게 진행될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한중일 각 국의 조선 산업 정책이 어떻게 변하게 될지, 이에 따른 '기회의 이동'이 어떻게 발생할 지도 궁금합니다. 또한 각 국가의 인구 변화 특히 제조업 관련 인력 증감 현황, 또한 국민 평균 임금 수준의 변화도 계속 관심을 갖고 지켜볼 예정입니다. 여러분들도 오늘 저와 함께 살펴보신 내용을 바탕으로 과연 어떤 나라가 한중일의 다음으로 차세대 조선업을 이끌게 될 것인지를 예측해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끝내기 전에 오늘의 주제와 연계하여 몇 가지 생각들을 여러분들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앞서 말씀 드린 대로 조선 산업을 위한 '신의 선물'은 누군가 열심히 한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조선은 엄청난 자본과 고정 시설을 불확실한 미래에 투자해야 하는 산업입니다. 그러니 특별한 기회 이동의 요소가 나오기 전에는 후발 주자가 생기기도 어렵고 기존 투자를 한 국가도 산업을 쉽게 포기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조선에 적합한 기반을 이미 갖춘 나라가 약점인 '제조 인력의 감소'와 '인건비의 상승' 등의 문제에 대한 창의적 해결책을 고안해 낸다면 어떻게 될까요?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예를 들어 부자 나라이지만 인구가 절대적으로 적어 신흥국 국민들을 노동인력으로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중동의 산유국들이나 싱가포르의 예가 있습니다. 만일 우리나라에서도 특정 산업에 한하여 제한된 인원 수의 외국인 노동자의 취업과 국제 시장가 기준의 임금 체계를 허용한다면 어떨까요? 아니면 통일이 되지 않더라도 경제협력 및 북한의 제조인력 육성 지원 차원에서 인력 교류를 할 수 있게 된다면 어떨까요? 흥미로운 주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의 주제는 여기까지입니다. 다음 편에서는 한국 조선소의 중흥을 이끈 IMF 그 거짓말 같은 역사의 현장과, 한국 중소조선소의 일순 몰락에 관한 뼈아픈 뒷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