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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il, 2021
[알기 쉬운 전공에세이] 질량-스프링-댐퍼 시스템으로 보는 조선공학:내항성능

<글 :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 홍사영 책임연구원 sayhong@kriso.re.kr

들어가며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말이 있는데, 필자도 조선공학도로 입문한 지가 어언 40년에 이르니 대한조선학회가 이를 어여삐 여겨서 작년 추계조선학회에서 필자에게 분에 넘치는 조선학회 학술상을 수여해 주셨다. 지면을 빌어 그동안 저의 연구생활에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신 선배, 동료, 후배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먼저 제 자랑부터 늘어놓은 이유가 학회로부터 작년 학술상 수상자는 학회 웹진에 전공에세이를 투고해야한다는 통보를 받아서 쓰는 글인 만큼, 정성을 다하기는 했지만 글재주가 용렬하여 내용이 부실하고 앞뒤가 안 맞는 글을 읽을 독자들에게 미리 양해를 구하기 위함이다. 

앞서 웹진에 훌륭한 글을 기고하신 분들의 글을 참고하고자 했으나, 언감생심 수준을 맞추기를 포기하고 필자가 그동안 연구소에서 오랫동안 일하면서 시대가 변하고 강산이 바뀌었지만 변치 않을 것(변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으로 믿는 몇 가지 조선공학 개똥철학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대관세찰(大觀細察)과 질량-스프링-댐퍼 시스템

세상에서 고수와 하수를 구분 짓는 잣대가 여럿이 있겠으나 그 중에 하나를 꼽으라면 디테일이 강한 가이다. 아마추어와 프로페셔널을 구분 짓는 잣대이기도 하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디테일이 강하려면 거시적인 안목, 즉 숲을 보는 눈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공학은 이론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현실문제 해결을 위한 유형, 무형의 결과물을 산출하기 때문에 구체적인 구현 방법이 뒤따라야 한다.  그래서 필자는 대관세찰이란 말을 엔지니어의 덕목 중 으뜸으로 생각한다. 당면한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하는 힘은 복잡한 현상을 단순화할 수 있는 지식, 통찰력이다. 그래서 대상이 복잡한 공학적 문제의 설계해석의 주된 해석법이 선형이론에 기초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통찰력의 근간이 되는 선형이론의 인문학적 표현이 대관세찰이라고 감히 주장하는 바이다. 섭동법(perturbation method)으로부터 고차항의 복잡한 비선형 방정식의 각 항의 차수를 따져서 결국에 선형방정식을 이끌어 내는 고난도의 작업이 세찰을 통해 대관을 볼 수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대관의 안목이 있기에 지배항(leading order)을 이끌어 내는 통찰력이 있는 것이다. 복잡한 물리현상에서도 결국 핵심을 나타내는 것은 리딩오더인 경우가 허다하다(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토목공학에서는 종종 자중을 기준으로 설계하중을 판단한다.). 필자가 35년 넘게 연구소에서 다양한 선박과 해양구조물의 내항성능 실험을 준비하고 해석하면서 기준으로 삼은 지식의 뼈대는 1자유도 질점역학의 선형 방정식인 질량-스프링-댐퍼 방정식을 벗어나지 않았다. 


선박은 질량-스프링-댐퍼시스템이다.

지금부터는 1자유도 질량(mass)-스프링(spring)-댐퍼(damper) 시스템을 통해 파랑 중 선박의 거동을 파악하는 내항성능을 설명해보고자 한다. 배는 자중과 부력이 평형을 이루어 물에 떠있다. 파도가 치면 파랑에 의해 배는 동요를 한다. 여기서 부력과 평형을 이루고 있는 선박 자체는 질량이다. 외력에 의해 평형이 깨지는 경우 부력의 변화가 생기는데 이 부력의 변화가 스프링이다. 배는 물과 접하므로 움직이게 되면 표면에 마찰이 생기게 되고 빌지킬(bilge keel)이 있는 경우 와류가 형성되며 동요로 인해 파도가 생기게 된다. 이와 같이 배의 움직임에 따라 생기는 주변 유체의 움직임은 에너지의 소산을 나타내므로 댐핑(damping, 감쇠력)으로 작용하게 된다. 운동 모드에 따라 댐핑 작동원리(mechanism)를 구별할 수 있는데 상세 내용은 후반부에서 다루고자 한다. 내항성능을 파악하는 방법으로 수치해석적 방법과 실험적 방법이 있는데 직관적으로 이해가 쉽고 눈에 보이는 모형시험을 가지고 이야기를 시작하고자 한다.
 

<그림 1 선체운동과 질량-스프링-댐퍼 시스템>


적게는 수십만 대 많게는 수백만 대의 판매를 목표로 하는 양산 자동차를 개발하는 경우는 보통 수십에서 수백 대 정도 수준의 실제 자동차를 가지고 여러 가지 성능시험을 한다고 한다. 구조적 안전성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실제로 여러 대의 실물 자동차를 부수기도 한다. 그런데 한척을 건조하는 선박의 경우에는, 더욱이 그 규모가 작게는 수만 톤, 크게는 수십만 톤의 무게를 가지므로 자동차처럼 실물을 대상으로 성능 실험을 할 수는 없다. 따라서 선급규정에 근거한 설계를 하며 선박의 중요한 설계 성능 중 하나를 차지하는 내항성능을 평가하는 시험에서는 축소모형을 가지고 모형실험을 한다. 축소모형 실험에서는 동역학적 상사성(dynamic similarity)을 만족하도록 모형과 실험조건을 정해야만 모형실험 결과로부터 실선에서의 성능추정이 가능하다. 조선공학 전공자라면 어렴풋이나마 후루드 상사법칙(Froude Law)을 들어봤을 것이다. 이 후루드 법칙이 내항성능 실험에서 동역학적 상사성의 기준이 된다. 역학적 의미를 살펴보면 통상적으로 관성력과 중력의 비로 설명되는데 가시적인 설명을 붙이자면 달리는 배가 만드는 파장과 선체의 길이 비가 된다. 따라서 후루드 수에 맞추어 모형을 축소시키면 실선 스케일과 모형선 스케일의 유체동역학적 현상이 같아지게 된다. 이는 두 스케일의 시험장면을 사진으로 찍었을 때 대응되는 선속에서 생성되는 파장과 선박의 비율이 같다는 뜻이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축소 모형을 만든 다음에 동역학적 상사성이 유지되도록 모형의 상태를 맞추어야 한다. 먼저 길이를 축척비에 따라 축소하면 자연스럽게 부피(질량)가 줄어들지만 파랑 중 거동의 동적 상사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질량-스프링 관계를 상사시켜야 하는데 이는 무게중심과 질량분포 맞춤으로써 시스템의 고유주기가 상사성을 갖게 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파랑에 의해 흔들리는 모형선과 주변의 파랑장을 포함한 전체적인 움직임을 촬영하여 축척비에 맞춰서 재현하면 모형시험의 결과로부터 실선에 해당하는 파도에서의 움직임을 볼 수 있다. 동적 상사성이란 축척모형에서의 물리량으로부터 실선에서의 성능을 체계적으로 추정할 수 있도록 하는 필요조건이다.

구체적으로 모형선에서 무게중심과 질량분포를 상사시키는 것이 세찰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는데, 경사시험(Inclining test)을 수행하여 무게중심을 맞출 수 있으며 관성능률시험(swinging test, 대상 물체를 그네에 매달아 주기를 재어 질량분포를 추정한다.)으로 질량분포를 상사시킬 수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질량과 스프링의 상사성을 맞추어 시스템의 고유주기가 상사된다. 실험에서는 당연히 계측 오차가 발생하기 때문에 계측치가 목표치의 오차범위로 들어오는 수준에서 조정을 한다. 무게중심과 질량분포를 목표치에 보다 가깝게 맞추기 위해서는 세심하게 질량을 이동시키는 작업을 하게 되는데 모형선을 만들 때 빈 모형선의 무게, 이동 가능한 여분의 무게를 정하고 경사시험과 관성능률시험에서 계측치와 목표치의 차이를 상쇄시키는 질량 1차모멘트, 질량 2차모멘트를 추정하고 반복적인 계측을 통해 목표치에 다다르는 과정은 세찰이라 할 수 있다. 즉 개념정의, 이론적 판단의 배경지식은 대관에 해당되지만 이론의 구체적 실행 방법은 세찰을 통해 구현된다. 물리적 지식의 깊이에 따라 구현하는 방법이 차이가 나는데 지식의 깊이가 부실할수록 실행방법은 조잡하고 복잡하게 된다. 하지만 초기 방법이 부실하더라도 대관세찰을 통해 방법을 다듬어 가면 궁극적으로 최상의 방법의 성취가 가능하다. 이러한 접근방법은 귀납법에 해당하는 것으로 기본적으로 인간의 불완전성을 염두에 두고 시행착오가 축적된 지식에 근거한 합리적 방법이라고 볼 수 있다.

위와 같이 모형선에 대한 준비가 끝나면 실선 파주기에 해당하는 파도를 생성해야하고 관심 대상 거동을 계측하기 위한 센서를 준비해야 한다. 후루드 수를 맞추게 되면 모형선에서의 파도의 주기와 선속은 축척비의 제곱근으로 축소된다. 내항성능은 결국 파랑이라는 입력에 대한 선체의 응답특성을 나타내는 것인데, 이를 간략화 하면 1자유도 질량-스프링-댐퍼 응답곡선으로 설명할 수 있으며 결국 공진주기, 공진주기에서의 응답의 크기가 주요 관심 대상이다.

그러면 계측된 선박 운동응답의 물리적으로 타당한지를 어떻게 판단할까? 선박이나 해양구조물의 형상, 규모에 따라 다양한 응답이 예상되지만 이 또한 질량-스프링-댐퍼 시스템의 물리적 지식을 바탕으로 판단이 가능하다. 일례로써 상하동요(heave motion) 의 물리적 특징을 직관적으로 판단해 보자. 장주기 파랑에서는 파장이 매우 길어지기 때문에 배가 파장에 비해 매우 작아 파도와 같이 움직이는 것으로 간주할 수 있는데(상하동요진폭/파진폭=1) 이는 장주기에서의 질량-스프링-댐퍼 시스템의 동적 응답특성은 정적응답과 같아지는 것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파주기가 매우 빨라지면 상하동요 응답비는 작아져 0으로 수렴하는데 이 또한 질량-스프링-댐퍼 응답곡선 특징과 일치한다. 그 이유를 물리적으로 살펴보자면 두 가지 설명이 가능하다. 첫째, 파장이 매우 짧다는 것은 배에 걸치는 파의 파정(wave crest)과 파저(wave trough)가 서로 상쇄되어 작용하므로 파랑기진력(wave exciting force)이 0이 되는 경우이다. 둘째로 매우 무거운 선박이 매우 짧은 주기로 움직이는 경우는 물리적으로 그 운동진폭이 극히 작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짧은 주기로 대진폭 운동을 할 수는 없다.). 운동주기가 극단적으로 짧아 운동진폭이 눈에 띠지 않게 작은 경우가 선체진동이다. 진동의 주파수가 올라가면 음향이 된다.

댐핑은 무엇인가? 선체운동에서 댐핑은 표면마찰, 와류생성, 파도생성에 의해 기인하는데, 이 중 후루드 상사법칙은 파도생성에서만 만족된다. 상하동요나 종동요와 같이 운동으로 인해 발생하는 파에 의한 댐핑이 지배적인 운동 모드는 상사성이 만족되지만 점성 마찰과 와류에 기인한 댐핑이 지배적인 횡동요는 모형시험 결과의 실선확장에 세심한 고찰이 필요하다. 댐핑의 주된 역할은 운동응답 감소로 나타나지만 그 효과는 공진영역에서만 국한된다. 그러면 왜 선체 운동 중 유독 횡동요 감쇠장치(anti-rolling device)만 운동제어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을까? 그 이유는 횡동요의 자체 댐핑이 작다는 점, 따라서 추가적인 댐핑의 증가효과가 크며 횡동요 운동특성 자체가 공진응답에 크게 좌우된다는 것으로 설명된다. 파랑생성에 의한 댐핑이 지배적인 상하동요, 종동요의 경우는 운동자체의 댐핑이 충분히 커서 추가적인 댐핑의 효과가 미미한 경우이다.
 

<그림 2 해양구조물 종류와 진동응답 곡선>
 

선박과 해양구조물의 내항성능 설계

앞서 다양한 형태의 선박과 해양구조물을 1자유도 질량-스프링-댐퍼 시스템으로 이상화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러한 단순화를 가장 모범적으로 구현한 분야가 부유식 해양구조물의 개념설계분야이다. 바다를 운항하는 선박은 폭풍조건에서 출항이 통제되거나 피항을 할 수 있는 반면 30년 이상 해상유전에서 생산작업을 해야 하는 석유생산플랫폼은 설치장소에서 황천 해상조건을 견디어야 한다. 이러한 목적으로 고안된 해양구조물이 반잠수식 시추선(semi-submersible platform) 형태인데, 기본 개념은 해상파와 공진을 피함으로써 내항성능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키는 것이다. 그 방법은 선박과 비교했을 때 주 부력체(lower hull)를 물속 깊이 잠기게 하고, 부력체 단면에 비해 수선면적이 작은 기둥을 수면을 관통하여 부력체와 갑판구조물과 연결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동일 배수량 선박에 비해 스프링을 작게 하였다. 그 결과 운동의 고유주기를 20초 이상으로 키워 해상파와의 공진을 회피하였으며 아울러 주 부력체가 깊이 잠김으로써 파랑기진력을 감소시켜 전체적인 운동응답을 감소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멕시코만에 많이 투입된 스파플랫폼(spar platform)은 반잠수식 시추선의 극단적인 개념으로 흘수 200미터 직경 30미터의 단일 원통의 단순한 형태를 취함으로써 스프링과 기진력을 극도로 줄인 형태이다. 한편으로 반잠수식 시추선 형태의 형상에 수선면적(waterplane area)이 갖는 복원력의 약 100배 정도의 강성을 갖는 강관(tendon)을 구조물과 해저 앵커에 연결하여 공진주기를 4초 밑으로 낮추어 공진을 회피하는 개념의 인장각식 플랫폼(TLP: Tension Leg Platform)도 있다. 이와 같이 복잡한 해양구조물 시스템의 공진을 회피하는 설계개념은 대관에 해당하며 목적에 맞게끔 형상을 설계하는 엔지니어링 기술은 세찰에 해당한다고 하겠다. 질량-스프링-댐퍼 시스템만 이해하여도 조선공학 엔지니어가 잘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마치며

세상은 돌고 돈다고 했던가? 기술도 돌고 도는 것인가? IMO CO2 규제 시행으로 80년대의 활발했던 부가저항연구가 30년 만에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이 뿐만 아니라 미래 스마트 선박인 무인선 및 자율운항 선박의 친환경 안전운항 문제, 또한 대한민국 해군의 경함모 사업추진 등은 선박의 내항성능 설계/해석기술의 르네상스를 예고하고 있다. 질량-스프링-댐퍼 시스템 지식이 근간이 되는 내항성능 연구가 전통적인 상선, 스마트 선박, 함정 모두에서 중요 이슈 대응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에 따라 시나브로 옛날 기술이 되어버린 내항성능 분야에 대한 후학들의 관심을 끌어보고자 부족한 지식과 필력을 무릅쓰고 필자가 엔지니어의 신조로 삼고 있는 사자성어 대관세찰을 주제로 하여 내항성능과 질량-스프링-댐퍼 시스템의 연관성을 설파해 보았다. 공학계 전반에 걸쳐 모두가 AI, 빅데이터, 디지털 트윈 플랫폼을 향해 달려가는 요즘, 조선공학에 입문한 후학들께 드리는 말씀 한 가지, 조선공학의 어떤 분야에서 일을 하더라도 질량-스프링-댐퍼 시스템의 개념과 친해지시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플랫폼 기술이 발달할수록 도메인지식의 가치가 높아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