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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il, 2021
[산업현장 이야기] 초짜의 DT 체험기

<글 : 현대삼호중공업 유영웅 Senior Engineer hero@hshi.co.kr

초짜의 DT 체험기


사람의 뼈와 근육이 몸 스스로를 지탱하는 것처럼 선박의 뼈대를 계획하고 설계하는 분야가 선각설계이다. 취업한 이래 이 분야에서 철판 두께 0.5mm 단위의 초정밀 설계에 목숨 걸어온 지 근 20년이 되었다. 

선체를 설계하는 담당자로서, 비유하자면 백선생까지는 아니어도 나름 가정식을 넘어 요리 좀 한다는 건방진 긍지를 느끼는 수준에 다다랐다고 할까? 익숙한 업무에 맞추어 하루하루 나름의 연구개발(?)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다. 

그런데, 작년 하반기가 시작하는 7월의 첫날 조직 변화에 따른 새로운 업무 이동이 나에게 주어졌다. 회사생활을 한다면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새로운 영역으로의 전환은 자의 반 타의 반 당연시 된다. 주변의 많은 이들이 이러한 경험을 하였고, 나 또한 자연스러운 조직의 이치라는 생각이 있었다. 허나 내로남불이라 했던가? 주위의 동료들에게 닥친 변화는 당연하게 느끼며 호들갑 떨지 말라던 입장이었지만 나에게 그러한 새로운 변화가 닥쳐오자 당황스러운 마음이 커졌다.

물론 필자도 긴 회사 생활 동안 상선 설계에서 벗어나 간간이 새로운 일에 참여한 경험이 있었다. 파나마 운하 확장 공사의 갑문 설계와 제작에 참여하며 색다른 경험도 해보았고, 파란만장했던 해양공사를 맡아 계약 시부터 마지막 Dry Towing까지 정신 못 차리고 지낸 적도 있다. 세월호 직립 공사에 참여하며 가슴 아린 경험도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경험들은 모두 구조기반의 엔지니어링 업무의 일환이었다.

보금자리를 떠나 새로 몸담게 된 곳은 “DT혁신기획부”. 넓게 말하면 미래 조선소(Future of Shipyard)를 꿈꾸며 전사의 디지털 변환(Digital Transformation)을 이끄는 조직이고, 좁게 말하면 IOT 기술 기반으로 생산지향의 원가 절감 달성을 추구하는 조직이다. 

선박 설계자 입장에서는 선박 자체의 DT(Digital Twin)란 단어는 어느 정도 익숙한 단어였지만, 이를 광의로 포함하는 DT(Digital Transformation)란 단어는 솔직히 의미조차 낯설었다. 그간 회사 생활로 얼굴만 알고, 실제로는 낯선 사람들과 새로운 업무를 시작한다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여하튼 새로운 조직으로의 이동은 나에게 살아남기 위한 변환(Transformation)을 요구하는 것 같았다. 한 해를 시작하는 지금에서는 누구보다도 열정적이며 끈끈한 동료들과 함께 일하고 있음을 감사하고 있지만 말이다. 

컨설팅 업체 AT커니는 DT를 "모바일, 클라우드, 빅데이터, AI, IoT 등 디지털 신기술로 촉발되는 경영 환경상의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함으로써 현행 비즈니스의 경쟁력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활동"이며 "아울러 새로운 비즈니스를 통한 신규 성장을 추구하는 기업 활동"이라고 정의한다. 즉, 기업의 DT 화는 “기업활동의 전면적인 디지털화”를 가리키며 이것에 의해서 경쟁력을 높이는 일련의 과정으로 말할 수 있다. 

‘Digital Transformation’을 약어로 사용할 때, 근래에는 DT 대신에 DX 단어가 많이 사용된다. "변혁"을 나타내는 "Transformation"이란 단어의 접두사인 ‘Trans’가 “어떤 것을 크로스 해 가로지르다”의 의미로 십자 모양의 X로 짧게 통용되기 때문이다. 환승을 뜻하는 Transfer라는 단어가 Xfer로 줄여서 사용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DT는 4차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미국 시장조사기관 포레스트 리서치는 "2020년을 기점으로 모든 기업은 '디지털 약탈자(Digital Predator)' 또는 '디지털 희생양(Digital Prey)' 중 하나가 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디지털 기술은 전례 없이 빠르게 비즈니스 환경을 바꾸고 있고, 이에 적응하지 못한 기업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실제로 지난해 9월 기준 글로벌 시가총액 상위 10개 기업 중 7곳이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구글 등 IT 기반의 플랫폼 기업이다. 불과 10년 전인 2009년, 시총 10대 기업 중 플랫폼 기업은 2곳뿐이었다. 또한 1960년대 기업 수명이 60년인 반면 2020년대 들어서는 12년에 불과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 조선의 절대적인 경쟁 상대는 중국이다. 중국과의 경쟁에서 원가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선박의 제품 경쟁력 향상과 더불어 기존과는 다른 혁신적인 원가 경쟁력 강화 방안이 필요하다. 

전통적인 제조 강국인 독일은 미래 제조업을 주도하며 경쟁력을 향상하기 위한 핵심 정책으로 인더스트리4.0 전략을 범정부 차원에서 적극 추진해 왔다. 인더스트리4.0이란 1단계인 기계화를 기점으로, 대량생산, 자동화에 이어 4단계인 지능화를 숫자로 표현한 것이며 이를 바탕으로 제조업의 경쟁력을 유지하고자 한다. 

중국에 밀려 점점 경쟁력을 잃어가는 우리나라 조선 기업들에게 지능화를 통한 스마트 제조는 불가피한 현실이자 배수진이다. 실패를 대비한 플랜B가 없는 배수진이라 말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만큼 절박한 자세로 디지털 전환에 나서야 하기 때문이다. 장밋빛 미래만 기대하기에는 스마트 제조를 향한 현실의 벽은 결코 낮지 않다. 23년 만에 다시 본국에서 운동화를 생산하며 인더스트리4.0의 성공 사례로 불리던 독일 안스바흐에 위치한 아디다스의 스마트 공장이 2020년 문을 닫은 것이 이를 방증하는 예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조선 공정 지능화의 시작은 보이는 조선소이다. 백문이불여일견(百聞而不如一見), Seeing is Believing, 이라는 속담이 동서양을 막론하고 존재하듯이 인간지능에서 시각이 차지하는 부분은 절대적이다. 마찬가지로 공정 관리 관점에서도 시각으로 가시화하고 지능화하는 부분은 매우 중요하다. 

조선소의 공정은 매우 복잡하며 많은 기계와 사람들의 수많은 인과관계로 이루어져 있다. 수십년의 역사를 가진 조선소 내의 공정은 수많은 구성원의 고민과 개선을 통하여 부분적으로 최적화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전체 공정이 지능적으로 최적화가 되어 있는 지는 의심스럽다. 수주부터 인도까지 전체 공정의 빈틈없는 효율화를 바라는 회사의 목표에 비추어 본다면 완벽히 최적화된 상태는 아닐 것이다. 혹은 왜곡된 사실을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고 비효율적인 업무를 이어나가고 있을 수도 있다. 

A와 B의 색깔은 같다. 그러나, 시각적으로는 A와 B의 색은 분명히 다르게 보인다. 믿기 힘들면 옆의 그림을 캡처해서 그림판에서 스포이드로 A와 B의 색을 찍어 보자. Data는 두 색이 같은 색임을 말하고 있을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삶과 일에 있어서 상당히 많은 경우 선입견에 따라서 판단한다. 이는 조선소의 공정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조선소에서 과거부터 적용되어 온 프로세스는 지금 조직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최적화된 상태가 아니다. 프로세스는 단지 들어오고 나가는 정보들을 토대로 자신의 선입견을 십분 발휘해서 그저 눈에 보이지 않는 문제를 포함한 결과를 만들어낸다. 그러면서 그 결과가 조직에서 달성할 수 있는 최대의 목표인 것처럼 착시 현상을 불러 일으킨다. 어차피 인간은 착시 현상을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면서 프로세스는 더 많은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선입견에 둘러싸여 더욱 거대하고 막강한 지배자가 되어 조직 위에 군림하게 되고, 우리 조선소 구성원들은 프로세스를 위한 단순 노동자가 된다. 

보이는 조선소라 하여 당장에 조선소 전체를 3D로 모델링하고 IoT 센서로 무장하여 조선소 자체의 완벽한 ‘Digital Twin’을 완성할 수 없다. 물론 궁극적으로는 그렇게 되어야만 하고 일부 조선소들은 일부분에서 성공적인 시작을 하고 있다. 하지만 당장 우리에게는 시간과 돈이 부족하다. 지금 우리나라의 조선산업이 그렇게 여유 있는 산업은 아니지 않는가!

가능한 범위에서 부족하더라도 신속히 공정을 가시화하고, 구축된 IoT 센서에 덧붙여 현 구성원들이 적극적으로 물류 흐름에서 센서 역할을 하며 현재 우리의 문제점을 드러내며, 보이는 문제부터 신속히 해결해나가는 애자일한 접근이 필요하다. 즉, 사물과 사람, 데이터, 프로세스 등 세상 모든 것이 인터넷과 연결되어 상호작용하는 만물인터넷(Internet of Everything)의 개념으로 확장해서 접근해야 한다. 

필자가 근무하는 회사도 그 첫걸음으로 내업공정을 약식의 ‘Digital Twin’을 이용하여 구현한다. 전처리 과정에서 철판에 프린트한 AR/QR code를 각 공정 단계에서 인식용 카메라/인식기를 활용하여 공정 데이터를 생산한다. 회사는 그 결과를 분석해 공정을 개선해 나가고 있으며, 성공 사례를 후행 단계로 확대해 나가고 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최신 ICT 기반 기술을 활용하여 눈에 드러나는 문제점을 인식하여 낭비 없고 안전한 생산체계를 구축하고자 한다. 이것이 설계와 생산이 연결된 조선소, 작업 관리자가 필요 없는 조선소, 고장 없이 운영되는 조선소, 모두가 안전한 조선소, 자동화 조선소, 중국과 차별화된 우리 조선소의 미래 모습이 될 것이다.

구성원 모두가 참여하는 DT는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지금 필자가 근무하는 회사처럼 독립부서를 만들어 전사적으로 디지털 전환을 추구하는 것은 대형 선박의 방향을 바꾸려고 날렵한 최첨단 레저보트를 띄우는 것과 같다. 레저보트가 질주하며 제아무리 방향을 바꾸려고 해도 거대한 선박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본선의 엔진을 가동시키면 어떠할까? 레저보트처럼 빠르게 움직이지는 못해도 방향을 전환해 원하는 항해를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독립부서의 역할은 레저보트와 같이 애자일하게 움직이며 수많은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빈번한 확률로 암초를 만나기도 하겠지만, 결국 조선소 구성원들의 공감대를 형성하여 DT의 방향으로 대형 선박의 메인 엔진을 가동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이건 누구를 감시하기 위한 것인가?” 

 

“누가 관리를 할 것인가?”

“낙하하여 안전사고의 위험은 없는가?


사내에 새로운 센서를 적용하였을 때의 반응이다. 비단 현장에서 근무하시는 분뿐만 아니라 현장의 풋풋한 젊은 관리자들도 부정적인 면이 많다. 더욱이, 지금까지 약간은 어둠의 영역으로 관리되었던 KPI(성과지표)들이 센서들을 통하여 중앙집중식의 Data로 나타나기에, 민낯이 드러난다는 우려에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럴 때마다 현업과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 공감대 형성에는 시간이 필요함을 느낀다.

DT를 입히는 것을 바라보는 선입견이 있다. 디지털을 무언가 삭막함에 대한 접근으로 보기도 하고, 일에 대한 강도가 더해지리라 생각하기도 하며, 일자리에 대한 위협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음을 부정하지 못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DT 추진의 근간을 형성하는 이유가 ‘사람이 먼저'라는 철학이며 조직간의 소통이 든든하게 받쳐주지 않는다면 절대 성공할 수 없다.

일자리 축소에 대한 걱정에 앞서서 점점 노동력 확보가 어려워지고 있음도 우리는 알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준비 작업을 하지 않는다면 머지않은 미래에 사업의 존폐를 이야기해야 하는 불행한 상황이 올 수 있음을 공감하고 같은 곳을 바라보며 추진을 해야 한다.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따뜻한 DT가 우리와 함께하길 바라며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 있는 지혜가 모두에게 필요한 지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