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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 2021
[조선인이 쓰는 조선 이야기] IMF, 조선산업의 역습과 중소조선소의 몰락, 그 뒷 이야기
<글 : 대우조선해양 이종무 책임 jongmoolee@dsme.co.kr>



IMF, 한국 조선산업의 역습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까지 한국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던 'IMF 사태'는 그 시대를 겪었던 많은 분들께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느닷없이 터진 이 '국가 부도 사태'에 멀쩡했던 기업들은 줄줄이 문을 닫고, 수많은 직장인들은 '명예롭게 퇴직한다'라고 포장되어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국가가 이런 상황인데도 조선소의 취업 문은 닫히지 않았고, 오히려 조선소의 인력 수급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진 것 같아 보였습니다. 그룹사의 해체를 겪으며 워크아웃에 들어갔던 대형 조선소도 얼마 지나지 않아 '워크아웃 조기졸업'을 선언하고 사명을 바꾼 뒤 엄청난 규모의 경영 혁신, IT 인프라 투자를 진행합니다.
 

어찌 된 일일까요?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IMF 때 대부분의 조선소들은 사실, '조용히 웃고 있었다'고 합니다. 왜 나라 전체의 금융과 산업이 휘청거리며 난리가 난 상황에서 어떻게 조선 산업은 홀로 웃을 수 있었을까요? 먼저 조선 산업의 시장 특성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조선 산업은 '전 세계가 하나의 단일 시장'입니다. 요새는 상품들이 국경을 초월하여 구매되고 소비되기 때문에 '세계가 단일 시장'이라는 말이 꼭 선박에만 국한된 말은 아닌 것도 같습니다. 그러나 내수 시장에서와는 달리, 해외 상품을 살 때는 관세 및 통관비, 운송비 등의 이른바 '무역 장벽 비용'을 지불해야 합니다. 또한 해당 물품이 품질 및 안전 등 '로컬 룰'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다면 규제를 받기도 합니다. 그러니 인터넷 상거래를 통해 문턱이 매우 낮아지기는 하였지만, '내수 시장'은 엄연히 해당 지역의 수요-공급의 법칙의 지배를 받으며 별도의 시장으로 존재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상업용 선박은 목적 자체가 대양을 항해(Ocean-going)하여 국가 간의 무역을 하는 수단이니 자유롭게 국가 간 이동과 거래가 가능해야 합니다. 그래서 조선소는 처음부터 그러한 '국제적' 운항과 거래에 필요한 모든 규정을 준수하여 선박을 만듭니다. 또한 설계 및 모든 건조과정에서 '이해관계 독립적 감리 기관'인 선급 협회 (Classification Society)의 감독을 받습니다. 그렇게 선박이 완성되면 선급에서 발급하는 인증서 등 각종 국제협약 증서 및 필요 서류들을 선주에게 제공합니다. 그래서 전 세계 어디서든 자유롭게 선박을 운행하고 거래할 수 있도록 합니다.
 

조선 산업에는 로컬 시장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착시가 존재합니다. 이는 미국의 '존스 액트 (Jones Act)'나 중국의 '국수국조(國輸國造)'와 같은 폐쇄적 해운 운송 정책과, 국적 선사가 자국 조선소에 선박을 발주하는 '자국 발주' 케이스 때문에 생깁니다. 그러나, 이것은 '국제 단일 시장'에서 고군분투하는 자국의 조선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지원책일 뿐 수출 시장과 독립된 내수 시장의 존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만일, 거꾸로 한중일이 일부 선종에 대해 수출의 쿼터를 제한하는 등의 '폐쇄적인 공급 정책'을 추진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조선소를 가지지 못한 대부분의 국가들은 이를 '국가 안보적 위협'으로 여길 것입니다. 그리고 비용이 얼마가 들든 자국 혹은 제3의 국가에 대안 조선소를 만들려고 할 것입니다. '메가톤급 기회의 이동'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지요. 결국 이러저러한 이유들 때문에, 조선 시장은 내수, 수출 구분 없는 단일 시장에서 참여자 간의 무한경쟁을 통해 거래가 이루지는 구조를 가지고 있고 앞으로도 이 추세에 큰 변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선박은 세계 단일시장에서 국제적 표준을 따라 거래됩니다. 때문에 선박 거래에서는 대부분 영문 계약서를 쓰며, 주로 '국제 기축 통화'인 달러화를 지불 조건으로 합니다. 심지어 분쟁이 생기면 영국 런던의 중재법원으로 갑니다.
 

한국이 OECD에 가입한 해는 1996년 12월입니다. 그러나, 한국의 조선산업은 이보다 6년이나 앞선 1990년 10월에 이미 OECD WP6 회원이 되었습니다. 이는 90년대 초반부터 한국 조선산업이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커지면서 국제 협력의 증진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회원국들의 요청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라보다 산업이 OECD에 먼저 가입했다는 사실, 놀랍지 않습니까?
 

조선 시장과 거래의 특징을 알았으니 IMF 때 '조선 산업의 웃음'의 이유가 짐작이 되시나요?
 

선박은 주로 달러화로 거래되기 때문에, 조선소에는 당연히 선박 건조 대금으로 막대한 규모의 '달러'가 입금이 됩니다. 이렇게 입금된 달러는 외국산 자재를 사는데 일부 다시 지출이 되고 나머지는 원화로 바꾸어 직원들 임금과 국내산 자재 구매대금을 지불합니다. 네, 당연히 이윤만큼 남은 달러도 있겠지요.
 

그럼 원화 대비 달러 환율이 오르면 어떻게 될까요? 달러로 받은 선박 대금은 환율 상승만큼 가치가 올라가지만 원가 지출 항목에서 원화로 지불되는 금액은 환율이 상승해도 그대로이니 조선소의 이익이 대폭 증가하는 효과를 가져옵니다. 예를 들어 설명 드리겠습니다.
 

환율이 달러당 900원 일 때 계약한 배의 값이 1억 달러, 원가는 약 90%인 9천만 달러이며 이 중 원화로 지불되는 비용이 약 40% (3천6백만 달러, 환율 달러 당 900원 적용 시 324억 원) 정도 된다고 해 봅시다. 이 배의 기대 이익은 10%인 1천만 달러, 90억 원이 됩니다. 그런데 환율이 달러당 1800원으로 2배로 뛰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선가(매출)의 가치는 2배인 1800억 원이 되지만 원가는 9천만 달러 중 달러로 지불하는 60%의 비용만 올라 1296억 원(달러 지불 원가는 5천4백만 달러 x 1800원/달러 = 972억 원, 원화 지불 원가 324억 원은 고정)이 됩니다. 결국 이익이 애초 대비 5배가 넘는 504억 원이 되는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IMF는 외환 위기였습니다. 즉, 국가와 기업의 달러 보유고가 바닥이 나서 생긴 일입니다. 국민들이 금 모으기를 한 것도 금이 기축 통화인 달러처럼 원화 가치의 폭락에도 버틴 거의 유일한 자산이었기 때문에 그랬던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의 조선소들은 그 귀한 달러를 회사마다 수십억 불씩 받고 있었을 뿐 아니라 경영적으로도 천문학적인 환차익을 보고 있었으니 그 시절 조선 산업은 그 위상이 남달라 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바로 IMF 때 한국 조선소들이 '남몰래 웃었던' 이유입니다.
 

IMF 이후, 한국 조선소들은 이러한 상황을 바탕으로 90년대 중후반부터 시작한 설비 확장을 더욱 과감하게 추진하고 기반 시스템 업그레이드와 인력 확충을 위해 공격적인 투자를 감행합니다. 일본의 패착과는 정반대의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 결과로 2000년대 후반까지 이어진 '조선-해운 수퍼사이클'의 수혜를 고스란히 받으며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해 나갑니다. 그 당시 한국 조선소들의 공격적인 설비 투자는 현재까지도 중국의 도전을 막아내며 세계 1위의 시장 점유율과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게 한 '결정적 선택'이었습니다. 
 

그러나, 좋은 일만 있었던 건 아닙니다. 수퍼사이클 이후 금융 위기 및 세계 경기 침체로 조선 산업이 조정을 받는 과정에서 한국의 중소조선소들이 한꺼번에 몰락하게 되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이 과정을 살펴보면 조선 산업이 국가적 정책과 금융 지원에 얼마나 의존도가 높은 산업인지, 그리고 '개별 기관의 나름대로는 합리적 결정'이 ‘국가 차원의 종합적 판단’ 없이 실행이 되면 한 산업에 얼마나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 알게 됩니다.


중소조선소의 몰락, 그 뒷이야기

세기말의 불안과 혼란, '새로운 밀레니엄'에 대한 기대가 공존하며 시작된 2000년대는 미국의 911 테러와 곧이어 터진 중동전쟁 등 초대형 악재들로 우울한 출발을 합니다. 그러나 세계 경제는 오히려 최고의 호황을 누리게 되는데, 침체를 우려한 미국의 적극적인 경기 부양과 '90년대에 이어 지속된 중국의 고속 성장 등의 영향 때문입니다. 이 결과로 해운과 조선 산업은 앞으로는 다시 보지 못할 것 같은 수퍼사이클을 마주하게 됩니다. 해운 물동량 급증에 선박 가격은 천정부지로 오르고 각국의 조선소에는 주문이 넘쳤습니다. 이 수혜는 앞서 시리즈에서 말씀 드린 대로 공격적인 설비와 인프라 투자를 감행한 한국과, 후발 주자로서 신규 조선 설비를 대폭 늘려 놓았던 중국에게 고스란히 돌아갑니다. 이때 한국의 중소형 조선소의 공급 설비도 급속도로 늘어났습니다. 신생 중소 조선소들이 여기저기에서 생겼고 그들도 역시 호황의 물결을 타고 시장에서 순조롭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수퍼사이클'은 그 이름이 가진 의미처럼 오를 때만큼이나 가파른 내리막길을 만들며 조선 산업을 위협하게 됩니다.
 

2007년 4월, 이름도 생소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발생합니다. 미국의 2위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 업체인 ‘뉴센추리파이낸셜’이 파산을 신청한 것입니다. 저는 이 당시 ‘강 건너 불구경하듯’ 뉴스를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해를 넘긴 2008년에는 상황이 더욱 심각해졌습니다. 9월 6일, 미국 재무부는 유동성 위기에 직면한 양대 국책 모기지 업체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을 국유화하며 총 2000억 달러 규모의 공적 자금을 투입을 결정합니다. 그리고 1주일 뒤, 세계 3대 투자은행이었던 리먼 브라더스를 구제하지 않고 그대로 파산시키기로 결정을 합니다. 이 파장은 미국의 금융권을 넘어 미국의 '모기지 채권'에 약 1조 달러 이상을 투자한 각국 중앙정부의 리스크로 퍼져나가 '세계 금융 위기'로 발전이 됩니다. 금융 위기는 그 당시 자유주의 경제학 신봉자(시카고학파)들이 주류였던 미국 금융권의 부조리와 그들이 '금융 공학'을 이용해 만든 '파생 상품'의 폐해를 극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금융위기'와 금융위기를 일으킨 주범인 '파생상품'은 모두 한국 중소 조선소의 몰락에 깊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의 미국 일간지 지면 (출처: internationalism.org)>


한국 중소 조선소의 몰락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저는 두 가지 결정적인 방아쇠(Trigger)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는 키코(KIKO : Knock In Knock Out), 두 번째는 선수금 환급보증(RG : Refund Guarantee)입니다.
 

먼저 첫 번째 방아쇠인 키코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키코는 기업의 환율 변동 위험을 줄이기 위한 '환 헷지형 통화옵션계약'의 이름입니다. 네, 키코는 ‘금융 공학’을 이용하여 만든 ‘파생 상품’입니다. 앞서 IMF 당시 조선업계가 얼마나 꿀맛 같은 환차익을 보았던 지를 설명하였습니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의 조선업계는, 거꾸로 달러당 1200원대에서 계속 점진적으로 하락하여 900원대에 이른 환율 때문에 고민이 많았습니다. 이 상황에서 원화 가치 상승에 의한 환율의 추가 하락은 조선소로서는 재앙이 될 수 있기 때문에 환율 하락 리스크 방지를 위해 적극적인 환 헷지 정책을 가져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때 등장한 것이 바로 키코입니다.
 

사실 키코는 일반적인 환헷지 옵션 상품과는 매우 다른 상품이었습니다. 즉, 일정 범위의 계약 환율 범위 내에서는 이익을 볼 수 있으나 범위를 벗어나면 기업의 일방적 손실이 발생할 수 밖에 없는 구조로 설계된 상품이었던 것입니다. 먼저 환율 하락 상황에서는 일정 범위의 환율에서만 헷징이 가능하고 약정 환율의 하한을 한번이라도 넘어갈 경우 계약 자체가 무효(Knock-out)가 되어 환율 하락에 대한 손실을 기업이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습니다. 환율 상승 시에는 더욱 심각한데, 계약된 환율 범위의 상한을 넘어가는 상황(Knock-in)에서는 계약금액의 '몇 배(계약에 따라 2~5배)'를 시중 환율(높은 금액)로 사서 약정 환율(낮은 금액)로 팔아야 해서 손실이 더욱 급격히 증가하였습니다. 보통 대기업들은 이런 상품의 위험성을 검토할 수 있는 조직과 내부 규정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중소기업은 오너와 재무담당 임원 등 몇 명의 신중하지 못한 의사결정이 쉽게 작동을 할 수 있는 구조입니다. 게다가 이 키코는 수주에 필수적인 'RG' 발급 주거래 은행들이 적극 권한 상품이었습니다. 그리고 ‘계약 범위를 벗어난 환율’은 수년간 패턴을 볼 때 '절대 발생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중소 조선소들은 위험성에 대한 별다른 고민 없이 '수수료가 없는 신통한 헷지 상품'이라 포장된 키코를 계약하게 됩니다. 심지어 일부 중소 조선소는 욕심을 내 필요 이상의 '오버 헷지'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실제 가입 초반에는 정상 계약 범위 안에서 움직이는 환율 덕분에 일부 이익을 얻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금융위기는 달러 당 8~900원대에서 횡보하던 원-달러 환율을 1500원대까지 수직 상승시켰습니다. 그리고 이후 상당 기간 동안 1300원~1600원을 오가는 '환율 고공행진'의 상황을 만들었습니다. 즉, ‘절대 발생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 버린 것입니다. '키코 공동대책위원회'에 따르면 당시의 손해는 723개의 수출 중소기업에서 약 3조 3000억 원의 규모였던 것으로 추정이 된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외환을 가장 많이 취급하는 수출기업이 어디일까요? 네, 이 피해 금액의 상당액이 중소 조선소에서 발생하였을 것으로 추정이 됩니다. (2019년의 모 일간지의 기사에 의하면, 금감원의 공식 발표와는 달리 재무제표에 반영된 15개 중소형 조선소의 2008년 이후 3개년 키코 손실 추정액만 6조 7천억 원에 이른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 당시 거의 모든 중소 조선소들이 키코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피해 금액은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수퍼사이클의 정점에서 수주를 한창 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조선소가 환 헷징을 주로 키코로 했다면 엄청난 피해 금액이 발생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중소 조선소들은 단순히 환차손을 조금 덜 보기 위해 가입했던 금융 상품으로 인해 십수 년이 지나도 갚지 못할 엄청난 빚을 지게 됩니다. 이 빚으로 조선소는 신용도가 급격히 떨어졌고 자체 자금 조달이 불가해져 은행 관리하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빚은 불황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고비 때마다 번번이 조선소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결국 중소 조선소들의 회생의 기회를 꺾어버리는 결정적 원인이 됩니다.
 

'그래도 거래 은행들은 막대한 이익이 났을 테니 국가가 중재해서 대책을 세우면 되지 않나?'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들은 바, "우리나라 은행들은 파생상품 거래로 수수료만 챙겼지 대부분의 이익은 아마도 국내에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니 정말 분통이 터지는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만약에 중소 조선소들이 그 당시 키코를 가입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금융위기 때 갑자기 오른 환율 덕분에, IMF 때의 대형 조선소들처럼 르네상스를 구가할 수 있었을까요? 미래는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이지만, 적어도 오늘날처럼 이렇게 처참하게 전멸의 길을 걷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중소 조선소 몰락'의 또 하나의 방아쇠인 ‘RG’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우선 RG가 무엇인지부터 설명드리지요.
 

선박은 '주문 생산 계약'을 통해 약 2~2.5년에 걸친 설계-생산 과정을 거쳐 고객에게 인도됩니다. 그런데 제조 업체인 조선소는 자재 대금과 설계 및 생산 비용을 어떻게 충당할까요? 비용이 막대하여 자체적으로 감당하기는 어려우므로 선주가 배의 총 구매 가격을 조선소에 적절한 시점에 분할해서 지급하도록 계약을 합니다. 정상적인 경우라면 계약금으로 보통 10%~20%, 건조 기간 중에는 주요 생산 절점(Key Event)에 2~3회로 나누어 60%~70%, 마지막 배를 인도받을 때 10~20% 정도를 내는 형태입니다. 물론 불황일 때는 선주의 입김이 세져 마지막 인도금의 비중을 극도로 높이는 Heavy-tail 계약이 성행하기도 합니다. 
 

선주는 주문한 배를 인도받기도 전에 이렇게 상당한 규모의 대금을 조선소에 선 지급 해야 하는데, 조선소가 그 사이에 망하기라도 하면 그 큰 돈을 소위 '떼어먹게' 되는 위험이 생기게 됩니다. 바로 이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 바로 'RG (Refund Guarantee : 선수금 환급 보증)'입니다. 조선소가 계약서에 있는 분할금을 '선지급' 받으려면,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은행에서 해당 금액만큼의 환급을 보장하는 'RG'를 받아 선주에게 제공해야 합니다. RG에는 '조선소가 문제가 생겨 계약을 이행하지 못하게 되면 은행은 즉시 선주가 선지급한 분할금을 이자를 포함하여 선주에게 즉시 반환한다'라는 보증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은행은 RG 발급의 대가로 조선소로부터 보장 금액의 약 1% 정도가 되는 수수료를 받습니다. 그리고 문제가 발생할 때를 대비하여 해당 선박에 대한 선순위 담보를 확보합니다. 그래서 선박 건조 계약은 선주와 조선소 양자 간의 계약이라기보다는 선주, 조선소, RG은행 3자간의 계약이라고 보는 것이 더욱 합당합니다. 또한 선박 계약의 '진짜 발효' 여부는 선박 계약서에 서명을 하는 때가 아니라 바로 'RG가 선주에게 발급되어 계약금이 조선소에 들어오는 때'라는 것이 조선 업계의 알려진 비밀입니다. 
 

그렇다면 이 RG가 어떻게 한국의 중소 조선소를 몰살시키는 방아쇠가 되었을까요? 그 얘기를 하기 전에 경쟁국인 중국의 상황을 먼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중국은 '연안 개발 전략'과 공업화 및 도시화 추진을 위한 '농민공 양성 정책'을 기반으로 한 때 조선소가 약 300여 개에 이를 정도로 조선 산업에 집중 투자를 해왔습니다. 그러나 수퍼사이클 이후 가파른 내리막, 그로 인한 불황의 파고는 한국뿐 아니라 중국을 동시에 덮쳤습니다. 그 결과로 중국에서도 엄청난 규모의 구조조정이 진행이 되었습니다. 현재는 그나마 제대로 운영이 되고 있다고 여겨지는 조선소가 약 50여 개, 그 중 경쟁력을 갖췄다 평가되는 조선소는 약 20여 개 수준으로 규모가 대폭 축소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은 한국과 달리 중국 정부에 의해 철저하게 기획되어 실행되었습니다.
 

중국의 조선소는 국영과 민영으로 나뉘어 있는데, 중국은 경쟁력이 없는 것으로 평가되는 민영 조선소들을 우선 정리하였습니다. 어떻게 하였냐고요? 간단합니다. 중국 정부는 블랙리스트의 반대 의미인 ‘화이트리스트’라는 것을 만들어 제한적인 금융 지원을 시행하였습니다. 즉, ‘RG를 통제'하였습니다. 각 민영 조선소들을 재무적, 사업적으로 평가하였습니다. 그리고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되는 조선소들은 국영 조선소들과 함께 ‘화이트리스트’에 이름을 올려주었습니다. 판단은 정부가 하고 금융권은 지침대로 이행을 하였습니다. 경쟁력이 없는 민영 조선소들은 이렇게 ‘질서 있게’ 정리가 되었습니다. 반대로 경쟁력 있는 민영조선소들은 극심한 불황에도 불구하고 ‘국가적 재정 지원 및 RG가 보장되는 조선소' 임을 세계 시장에 알리며 생존 및 발전을 지속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국영 회사도 그대로 두지는 않았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중국의 국영 기업은 '부도'라는 개념 자체가 없습니다. 부실화된 국영 조선소는 아직 재정상태가 양호한 다른 국영 조선소, 또는 시너지가 나는 국영 해운, 에너지 회사와 합병을 시켰습니다. 조선 경기의 침체가 계속되자 국가는 이런 개별 조선소간의 합병을 지속적으로 추진하였습니다. 그리고 2019년에는 양대 국영 조선그룹인 CSSC과 CSIC를 합병함으로써 '더 이상 할 것이 없는 상태로' 구조조정을 마무리하게 됩니다.
 

또한 이 과정에서 중국은 조선 산업의 부실화로 인해 고통을 겪고 있었던 중국의 상업 은행에 '선박 리스금융 자회사'를 설립시킴으로써 위기를 정면으로 돌파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중국의 은행들은 이제 조선소에 문제가 생기면 단순히 RG 금액을 선주에 물어주고 부실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소극적인 입장이 아닙니다. 문제가 된 선박은 스스로 인수하여 '선주로서' 끝까지 건조를 완성을 시킵니다. 그리고 신조 혹은 리세일 시장에 적절한 타이밍에 정당한 가격을 받고 매각하여 은행에 손실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합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중국의 은행들은 이제 신조 시장에서도 자국의 조선소를 지원하는 막강한 해운 금융기관으로서 입지를 다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중국의 '선박 리스금융 회사'가 전통적인 '유럽 선박 금융 기관'의 역할과 규모를 넘어서서 국제 해운 업계에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수준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2016년 당시 중국 선박 리스금융 회사의 부각을 기사화한 내용 (출처 : shippingherald.com)

 

우리는 어땠을까요? 아마도 시장이 한참 고꾸라져 어려움이 심화되고 있던 2010년대 중반이었을 겁니다. 이 시기에 거의 모든 중소 조선소들은 재정적으로 매우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키코로 생긴 빚과 지속된 불황 속에서 재무지표가 악화되고 현금 유동성에 경고등이 켜졌습니다. 경영난을 타개하고 자체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수주'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이런 시기에 중소 조선소의 주 거래 은행들에게 상급 금융 관리 기관으로부터의 공문이 접수됩니다. 직접 보지는 못하였지만 전해 들은 내용은 대강 이렇습니다. "중소 조선 업계의 부실이 심화되고 있으니 각 은행들은 대출 현황을 주의 깊게 모니터링하고 문제 발생 소지가 있는 여신은 '고정 이하'의 등급으로 관리하라.” 
 

저는 이 공문의 내용 자체는 문제가 전혀 없다고 생각합니다. 금융 감독기관에서 부실 징후가 보이는 산업군의 기업 여신을 철저히 관리해 달라고 한 것입니다. 금융권의 동반 부실 리스크를 막자는 ‘어찌 보면 너무도 당연한’ 요청입니다. 그러나 그 공문 한 장이 결국 '한국 중소 조선소 전체’를 고사시키는 결정적 한방이 되었습니다.
 

여신은 건전성 분류에 따라 정상, 요주의, 고정, 회수의문, 추정손실의 5단계로 관리됩니다. 정상과 요주의는 ‘정상 수준’의 여신을 말합니다. 고정은 '경계성 상태'로 3개월 이상 연체되고 채무상환능력의 저하 요인이 존재하는 여신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회수의문과 추정손실은 ‘위험 수준’의 여신을 말합니다.
 

즉, '고정 이하'의 여신은 일단 '정상이 아닌 여신'이란 뜻입니다. 은행은 '고정 이하로 떨어진' 중소 조선소 여신에 대하여 상당 규모의 손실 충당금을 설정해야 했습니다. 은행의 손익이 급속도로 악화됩니다. 그 당시 "조선소들 때문에 올해 직원들 상여금이 다 날아갔다"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니, 선박 대금과 같은 큰 금액을 보장하는 RG를 신규로 끊어 준다는 것은 여신 결재라인이나 심사역들이 '도무지 할 수 없는 일'이 됩니다. 즉, '은행에 엄청난 손실 충당금을 추가로 쌓게 하는 결정'이 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렇게 경영난을 겪고 있는 중소 조선소들에 대한 시중 은행의 RG가 막히게 됩니다.
 

그 당시 중소 조선소의 영업 담당자들은 선주나 브로커로부터 계속 이런 이메일이 시달립니다. "RG가 나올 수 있는 거야? 그게 확정이 돼야 발주를 할 수 있어." 심지어는 계약 직전까지 갔던 어떤 선주는 갑자기 연락이 되지 않다가 며칠이 지난 후 브로커를 통해 연락을 해 왔습니다. "미안해, 너도 알다시피 이 프로젝트가 나한테는 엄청 중요한데, 우리 쪽 파이낸싱 은행에서 너희 조선소는 RG가 불확실하니까 중국 국영 조선소 쪽하고 계약하는 조건으로 바꾸자고 해서 그렇게 되었어..."
 

앞서 소개한 대로 중국은 살아야 할 조선소를 미리 정해 일부를 살리는 전략을 실행했습니다. 화이트리스트 정책이라는 매우 일방적이지만 투명한 제도를 통해 '이 조선소는 살아남을 조선소'라는 사인을 명확히 시장에 주었습니다. 그 당시 이런 원칙을 이해한 시장 수요자들은 화이트리스트에 있는 중국 조선소에 선박을 발주하는 데 있어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한국의 중소형 조선소에 RG가 잘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수 차례 확인한 브로커 및 선주들은 사업 투자 계획을 차질 없이 진행하기 위해 중국의 '화이트리스트' 조선소의 문을 두드립니다. 그렇게 몇 년, 한국 중소 조선소가 강점을 가지고 우위에 있던 중소형 탱커, 화학제품 운반선, 중소형 컨테이너선, 특수목적선 등의 시장이 하나하나 중국으로 넘어갔습니다. 엄청난 '기회의 이동'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키코와 RG 모두 금융 관련 사안입니다. 그러나 오해를 없애기 위해 말씀 드리면, 저는 “중소 조선소가 금융권 때문에 망했다”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금융권은 금융권 나름의 원칙과 제도 그리고 특성이 존재합니다. 어떤 경우에 조금 더 도와주지 않았다는 '섭섭함'은 있을지언정 그것이 산업을 망쳤다는 원망은 과한 것입니다. 또한 그런 해석은 조선 산업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제가 경험했던 은행들은 제도권 안에서 할 수 있는 방법을 모두 동원했고 매 위기의 순간마다 조선소와 함께 해법을 찾고자 최선을 다하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당시 국가의 역할에 대한 부분은 아쉬움이 많습니다. 왜 어떠한 정책적 판단이나 조정 없이, 한 산업의 운명을 그냥 금융권의 생리와 판단에 의해 그냥 '흘러가도록' 놔두었을까요? 적어도 세계의 1, 2위를 다투는 산업의 중소기업 전체에 해당하는 위기 상황이었습니다. 종합적이고 선제적인 판단은 차치하고라도 적어도 '경쟁국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정도라도 한번 살펴보는 게 필요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현재의 글로벌 조선산업은 기존에도 그래왔지만 그간의 장기 불황의 영향으로 국가 간 경쟁의 모습으로 더더욱 변해가고 있는 양상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개별 업체의 경쟁력도 중요하지만 국가의 조선 산업에 대한 종합적이고 전략적인 정책도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것을 기억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한국 조선 산업의 미래를 위해 한 번 쯤은 꼭 다시 한번 들여다봐야 할 ‘아픈 손가락’인 ‘해양플랜트 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드릴 예정입니다. 해양플랜트 사업의 실패는 한국 조선 산업이 최정상에서 바닥으로 미끄러진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세간에는 이미 많은 분석이 넘치지만, 이번 기회에 저의 시각으로 그 원인을 다시 한 번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시리즈의 마지막 편인 다음 이야기에도 회원분들의 많은 관심을 부탁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