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AKZINE

비회원이 작성한 글입니다!

글작성시 입력했던 비밀번호를 입력해주세요.

목록
October, 2019
[알기 쉬운 전공 에세이] 조선산업이 왜 이런 대접을...

 <글 : 한국기계연구원 김학진 감사 jeankim58@naver.com>

대한조선학회 웹진에 글을 써달라는 청탁을 받고 솔직히 ‘내가 왜?’라는 의문이 들었다. 대학에서 조선공학과를 졸업하기는 했지만 전공 관련 일을 한 것은 조선소에서의 1년도 안 되는 짧은 경력 뿐, 30여년을 언론계 NGO 공공기관 등에서 일해 온 필자는 조선공학에 대해 일반인들보다 잘 알지도 못하고 스스로 전공을 내세운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원고청탁을 받아들인 이유는(절반은 저녁에 아는 후배 교수로부터 걸려온 전화에 얼떨결에 그러겠다고 덜컥 말을 해버린 때문이지만) ‘조선공학과를 졸업했다는 것’이 평생 꼬리표처럼 필자에게 붙어 다닌다는 점 때문이다. 가령 기자 시절 조선산업과 관련된 일이 터지면 동료 기자는 “조선업체들은 왜 그래? 앞으로 어떻게 될 거 같아?” 이런 식으로 내게 물어오곤 했다.

정작 필자는 기자 시절 조선산업을 내 출입영역으로 삼아 취재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도 담당 기자는 필자가 마치 조선산업의 내밀한 구석을 꿰뚫고 있는 것처럼 이것저것 캐물었다. 당시 자존심 때문에 모른다는 말은 차마 못하고 학과 선후배들에게 전화로 물어봐서 아는 대로 도움을 준 적이 있다.

필자가 언론계에 있을 때(1986~2000년) 조선산업은 여러 번 위기가 있었지만 ‘세계 1위’ 조선강국으로 올라서며 잘 나가던 시절이었다. 조선공학과를 졸업했다고 하면 주위에서 좋은 전공을 버리고 힘든 기자 생활을 하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이럴 때는 우쭐하기도 하고 비록 우리나라 조선산업에 기여한 바는 없지만 조선공학과를 나온 것이 자랑스럽기도 했다.  

조선공학과를 나와서 직장 생활 대부분을 ‘비(非)조선’의 길을 걸었지만 조선산업은 계속 나의 관심사였고 뭔가 가지 않았던 길에 대한 아쉬움 같은 것이었다. 그런 이유로 학회지 원고 청탁을 받은 것을 기회로 삼아 지난 시절 조선공학과 관련된 몇 가지 에피소드와 조선공학에 대한 (애정 어린 외부인의 시각이지만) 필자의 생각을 전공자들과 앞으로 조선공학을 전공할 학생들에게 얘기해보려고 한다.

노르웨이 연구원이 던진 한마디

1990년대 중반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동아일보 과학부 기자로 있던 필자는 연중기획 ‘첨단산업의 현장을 가다’ 시리즈물 취재를 위해 스웨덴 노르웨이의 조선 관련 연구소들을 방문했다. 지구 반 바퀴를 돌아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에서도 서너시간 차를 타고 간 연구소에서 취재를 거의 마칠 무렵 노르웨이 연구원이 이렇게 물었다.

“당신이 취재한 내용은 한국의 현대나 대우 연구소에 가면 훨씬 더 기술적으로 우수하고 풍부한 현장 경험을 들을 수 있을 텐데 굳이 멀리까지 온 이유가 무엇인가요?”

순간 쇠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첨단산업의 현장을 가다’란 주제로 해외 연구소를 취재하면서 정작 우리나라가 이미 조선강국으로 올라선 것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 연구원에 따르면 당시 한국이 앞서있는 LNG선박이나 대형 유조선에 관한 자료들은 한국 기업이나 학계에서 나온 것들을 자신들도 참고하고 있다고 했다.
북유럽까지 멀리 출장 와서 헛수고 한다는 느낌도 들었지만 우리보다 앞서간다고 생각했던 나라들이 한국을 인정해준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조선산업 관련 뉴스는 왜 부정적일까

그 후 몇 년이 지나 서울대 조선공학과로부터 초대를 받았다. 당시 학과장이던 최항순 교수님으로부터 ‘조선공학과 커리큘럼’ 개선에 대해 자문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은 것이다. 필자 뿐 만 아니라 여러 명이 초대되었는데, 조선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과 조선공학과는 졸업했지만 다른 직업을 가진 졸업생이 반반씩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때 필자는 두 가지 의견을 냈던 것으로 기억한다. 첫째는 조선공학과에서 공부할 때 전공수업은 두루 잘 갖추어져 있었지만 엔지니어로서 필요한 여러 소양은 학교에서 얻을 수 없었다는 점이다. 산업 전반에 대한 이해나 기업에서 필요한 마케팅 개념, 특히 자신의 생각을 글이나 말로 표현하는 능력도 같이 공부할 수 있도록 학과 커리큘럼에 반영되었으면 한다는 의견이었다. 


또 하나는 언론계에 근무하면서 조선산업에 관한 뉴스는 부정적인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을 느꼈다. 조선산업의 불황, 과잉투자, 노동쟁의 등등. 조선산업이 수출위주이다 보니 국내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광고나 마케팅이 별로 없었고 그래서 조선산업이 잘 나갈 때는 뉴스가 거의 나오지 않다가, 조선산업에 뭔가 문제가 생기면 부정적인 보도들이 쏟아져 나오곤 했다. 그로 인해 국민들은 조선산업이 이제 사양산업이 아닌가 의심을 하게 되고 조선공학과를 지망하려는 학생들도 망설이게 만드는 형편이었다.

그래서 필자는 조선업체 경영진이나 조선공학과 교수 등 리더들이 나서서 조선산업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강조하고 국민들이 우리나라 조선산업에 대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캠페인을 벌여야 한다고 제안했었다. 

세계 1위 조선강국의 내공은?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난 현재 우리나라 조선산업은 또다시 위기를 맞고 있다. 중국에 밀리다가 올해 들어 ‘세계 1위’ 자리를 되찾았다고는 하지만 아직 세계 시장 전체가 침체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대형 조선소의 뒤를 받쳐줄 중소형 조선소들이 무너져 많은 실업자들이 발생했고 그 결과 거제나 울산을 가보면 불황으로 인한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여전히 언론의 조선산업에 대한 보도는 어두운 면이 부각되고 있고 조선소가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수많은 엔지니어들이 구조조정이라는 명목 아래 직장에서 쫓겨 나오는 모습을 보면서 조선공학을 전공하려는 학생들도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지울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조선산업이 그동안 한국 경제에 기여한 만큼 우리 사회에서 그 공을 인정받고 앞으로도 계속 ‘세계1위’를 유지할 수 있게 산업 경쟁력을 키워 가고 이에 필요한 국가적 지원을 당연히 받아야 한다고 본다. 더군다나 한국의 조선산업은 아직도 세계 1위를 지키고 있고 해외에서 경이로운 눈으로 보는 자랑스러운 산업이 아닌가.

지구에 오대양이란 큰 바다가 존재하고 인류가 무역을 통해 경제교류를 하는 이상 선박에 대한 수요는 끊임없이 존재할 것이다. 또 바닷속 무한한 자원을 이용하려면 해양플랜트 산업도  미래의 유망한 분야가 아닐 수 없다. 조선해양산업이 인류가 존재하는 한 사양산업이 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나라는 아무 것도 없는 모래밭에서 지금은 누구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세계 최고의 조선강국으로 우뚝 올라섰다. 이렇게 되기까지 수많은 선배 엔지니어들의 피눈물 나는 노력이 있었을 것이다. 열악한 노동조건에서도 최고의 기술로 밤낮없이 일한 노동자들의 기여도 무시할 수 없다.

세계 최고의 조선산업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우리나라가 지난 20여년간 세계 1위를 유지한 데는 산학연의 끈끈한 시스템과 세계 최고 수준의 산업인력(엔지니어와 노동자) 그리고 정부의 효율적인 정책 지원이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것이 수십년간 이어지면서 ‘엄청난 내공’으로 쌓여있다고 본다. 

이러한 ‘내공’은 축적하기는 어렵지만 허물어지기는 한순간이다. 그 모든 것이 사람들이 머릿속과 네트워크 그리고 시스템에 녹아 들어있기 때문이다. 시스템이 와해되고 산업인력들이 흩어지며, 새로운 우수 인력들이 유입되어 계승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엄청난 내공이라도 순식간에 사라질 것이다. 조선공학 분야에 우수한 인재들이 양성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한조선학회에 바라고 싶은 것

여기까지 필자의 조선산업에 대한 단편적인 생각들을 피력했는데... 대한조선학회에 바라고 싶은 것이 하나 있다.

조선산업에 대해 궁금한 점이 많았다. 그런데 그 궁금증을 채워줄 무언가를 찾을 수 없었다. 한국의 조선산업은 어떻게 세계 최고가 되었을까? 한국의 조선산업이 강한 이유는? 중국의 도전을 어떻게 하면 뿌리칠 수 있을까? 등등. 이런 의문들을 시원스레 해소해주는 보고서를 과문한 탓인지 모르지만 아직 보지 못했다. 대한조선학회에서 이런 궁금증을 풀어줄 수는 없을까.
그것이 너무 거창한 작업이라면 조선공학 또는 조선산업의 초창기 멤버들을 찾아 이런 의문에 대한 그들의 의견을 들어보는 것도 좋겠다. 지금은 대부분 은퇴한 그들이 옛 기억을 더듬어 조선강국으로 올라서기까지 생생한 히스토리를 남긴다면 무척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다. 시간은 흘러 기억은 사라지고 그 사람들이 언젠가 고인이 된다면 역사도 함께 묻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소개>
서울대 조선공학과를 졸업하고 인천조선(현재 현대삼호중공업)에 잠시 근무했다. 언론계에 뛰어들어 <동아일보> <전자신문> <과학동아> 기자로 일했고 <아이뉴스24> 편집국장, <사이언스타임즈> 편집장을 지냈다. 과학기술 분야 NGO인 과실연 초대 사무국장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기계연구원 감사로 재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