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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uary, 2022
[자유기고] 국제선형시험수조회의(ITTC)와 수조시험연구회(KTTC)의 태동

 <글 : 서울대학교 김효철 명예교수 hyochulkim1940@gmail.com

14차 ITTC가 개최되던 1975년, 봄 학기에 나는 용접과정 중에 나타나는 온도분포에 따라서 소재 내부의 열응력을 이론 해석한 논문으로 구제학위제도에 따른 학위 청구 논문을 제출하였다. 논문심사 중에 실험적 검증보완 요청이 있어 산업체에서 기계설계 경험을 활용하여 계측기기를 설계 제작하여 과도적 온도분포를 실험 계측하였다. 정형화된 실험은 아니었으나 계측결과가 비교적 순조롭게 얻어져 9월경 학위논문이 승인되었다. 1976년 봄 졸업식에서 구제학위제도로 학위를 취득하는 마지막 공학박사의 한사람이 되었다.

서울대학은 1962년에 수립한 종합화 5개년 계획에 따라 공과대학이 공릉 캠퍼스에 잔류하는 계획이었으나 1968년에 서울대학교 종합화 10개년 계획에서 관악캠퍼스로 이전하기로 변경하였다. 10개년 계획에 참여하였던 황종흘 교수는 Colombo 계획으로 1969년 봄부터 1년 간 동경대학에 체류하며 대학발전 계획을 위한 자료를 조사하였다. 이 시기에 황종흘 교수는 T. Inui 교수의 조언을 받아 공릉동에 있던 중력식 선형시험수조를 예인전차 방식의 현대적 선형시험 수조로 발전시켜 관악캠퍼스 이전계획에 반영하였다.

해방 전부터 사용하던 옮기면 파손될 낡은 계측기기와 ICA 자금으로 시설한 옮기기 어려운 대형 실험시설은 대부분 관악캠퍼스 설계에 새롭게 계획하여 반영하여야 하였다. 자연스럽게 조선공학과의 중력식 선형시험수조는 현대적 선형시험수조로 발전하는 기회가 되었다. 공과대학 이전은 대부분의 실험 계측시설을 새롭게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으나 정부의 예산확보도 쉽지 않은 큰 예산이 필요하였다. 예산 문제로 공학 캠퍼스의 이전계획을 쉽게 확정하지 못하여 공과대학 캠퍼스 설계는 여러 차례 미루어지기도 하였다.
 

<서울대 선형시험수조 착공(1981.2)과 건물준공(1982.12)>

 

1972년 대한조선공사는 18000DWT 화물선 Pan Korea를 건조하여 우리나라 조선산업의 대형선 건조 능력을 보였으며 그 후 현대중공업은 초대형유조선 Atlantic Baron을 수주하며 자리 잡았다. 정부는 조선산업을 이끌 소수 정예 인력을 양성할 수 있도록 경제개발 특별예산으로 서울대, 부산대, 인하대 등의 실험 실습 설비를 지원하였다. 1975년에 대한조선학회는 선박의 성능을 실험 평가함으로써 조선산업의 수주 활동을 직접 지원하는 선형시험수조의 중요성을 알리려고 선형시험수조와 관련한 심포지엄을 개최하여 강조하였다.

인하대와 부산대는 대일 청구권자금으로 선형시험수조를 건설하였으나 서울대학은 종합화 계획에서 예산을 배정받아야 하였다. 1973년 연말에 일본대사가 Colombo 계획으로 일본을 방문하였던 교수들을 초청한 만찬 모임에 초청받은 인사 중에는 황종흘 교수가 포함되었다. 만찬 자리에서 선진국들이 한국의 여러 대학을 지원하였으니 일본은 공과대학 이전사업을 지원하라 제안하였다. 일본 정부는 계측기 산업 세계시장진출에 도움이 되리라 판단하고 무상원조 자금 (Japanese Government Grant:JGG)으로 지원하였다.

JGG 자금이 외교적 행정절차를 거쳐 1974년 12월 공과대학에 배정되었고 공과대학 전체의 이전계획도 촉진되었다. 조선공학과는 1975년 예인전차를 국제입찰로 도입하였고 연차적으로 계측 장비를 도입하였다. 1975년 1월에 서울대학은 종합화 계획으로 1차로 인문 계열부터 관악캠퍼스로 이전을 시작하였으며 공과대학의 배치와 건축 설계가 진행되었다. 이 시기에 나는 기업에서 기계설계업무를 담당하며 얻은 경험으로 학과가 발주한 전차와 계측 장비의 설계도면을 검도 승인하는 업무를 지원하고 있었다.

조달 입찰에서 수주 확정 후 설계자가 시간에 쫓기며 작성한 도면들이어서 여러 곳에 오류를 발견하였고 설계자와 확인하는 과정에 도입 장비를 잘 이해하게 되었다. 그런데 학과 교수회의에서는 관악산에 수조를 새롭게 설치하는 선형시험수조 장비를 실질적으로 이해하는 교수가 관리하여야 한다며 나에게 수조 업무를 담당하라 결정하였다. 용접 문제로 1976년 봄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는데 생각지도 않던 수조 실험실을 맡게 되었고 그해 겨울 방학 중 Colombo 계획으로 3개월간 일본의 주요 수조실험 시설을 살피고 돌아왔을 때는 학과장 업무와 함께 학과의 이전 업무까지 맡아야 하였다.
 

 
<선형시험수조 준공 후 실험실을 방문한 T. Inui 교수의 기념사진
(좌로부터 T. Suzuki 교수, 필자, T. Inui 교수, 황종흘 교수)>


1975년 제14차 ITTC 회의에서는 12차 ITTC에서 제기된 회원들의 자격을 심사하기 위하여 심사위원회를 구성하여 해당 기관을 방문하여 직접 심사하기로 하였다. 이제 조선산업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여놓으려는 우리나라로서는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관문이 앞에 놓인 셈이었다. 1976년 대한조선학회 이사회에서는 수조시험연구위원회 위원을 위촉하고 ITTC에 대응하여 KTTC라는 조직을 학회의 위원회로 설치하려 하였다. 하지만 이때까지는 수조 활동의 초창기로서 위원회를 이끌어 갈 위원장 선정조차도 쉽지 않았다. 


1977년 가을이라 기억하는데 ITTC는 집행위원회를 중심으로 하는 심사위원단이 한국을 방문하여 회원자격을 심사하였다. 인하대학과 부산대학에 예인전차 방식의 선형시험수조가 설치되어 있었으나 ITTC에 회원가입을 신청하지 않은 상태이었으므로 회원기관인 서울대학과 회원가입을 신청한 선박연구소가 심사 대상이었다. 심사단이 일본을 거쳐 부산으로 입국하여 우선 대한조선공사와 현대중공업을 방문하도록 일정을 계획하였다. 현대중공업은 조선소 시찰뿐 아니라 일행을 경주 지역으로 관광 안내하며 극진하게 접대하였다.

서울대학의 회원자격 심사에서는 중력식 소형 시험수조로 60여 척의 표준형선 설계를 뒷받침한 업적이 ITTC의 목적에 부합하는 업적으로 평가받았다. 그리고 관악캠퍼스로 이전하는 선형시험수조의 개념설계가 T. Inui 교수의 기본설계로 이루어졌으며 규모가 일본대학의 수조 규모 이상임을 설계도서로 확인하였다. 선박연구소 수조는 착공 이전단계였으므로 설계도서만으로 삼사가 이루어졌다. 현대중공업이 울산과 경주에서 베푼 환대가 주효하였던지 설계도서만으로 이루어진 심사에서 두 기관 모두 회원자격을 인정받았다.

1977년 자격심사에서 시설 규모가 ITTC 외원기관으로 적합하다는 판단을 받은 두 기관 모두 1978년 Hague에서 개최한 15차 ITTC에 반드시 참석하여야 하였다. 서울대학 수조의 설계와 시설확보에 노력을 기울인 황종흘 교수가 서울대 수조를 대표하여 참석하였으며 선박연구소에서는 초대 윤정흡 소장이 사임함에 따라서 후임 소장으로 취임한 김극천 교수가 대표로 참석하였다. 그리고 수조실험 실무 책임자로 양승일이 참석하였으며 총회에서 선박연구소가 ITTC 정회원 가입이 확정되어 우리나라의 두 번째 회원기관이 되었다,

당시 대학교수가 국제회의에 참석하며 여행 허가와 여비지원을 받으려면 논문발표가 필수 조건이었는데 ITTC는 논문발표 없이 기술동향을 보고하는 회의여서 여행 허가부터 쉽지 않았다. ITTC는 선형시험에서 다루는 실험 분야의 전문위원회를 두었으며 주요지역의 전문가로 기술위원회를 구성하고 해당 분야의 연구 동향을 조사 분석하여 새로운 연구 방향을 제시하는 형식으로 회의를 운영하고 있다. 따라서 전문위원회의 위원으로 활동이 중요하였으나 우리는 아시아 지역을 대표하고 있는 일본 기술위원을 대체할 연구자를 찾기 어려웠다.

결국, 1976년 학회이사회에서 구성하려 하였던 KTTC 조직과 활동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1980년 4월에 선형시험수조를 가지고 있는 4개 기관의 대표자와 몇몇 관계자가 선박연구소에 모여서 KTTC를 창설하였다. KTTC창립회의에 선형시험 수조를 가지고 있는 부산대학과 인하대학이 참석하였으나 선형시험수조는 ITTC의 회원기관이 아니었다. 회원기관인 서울대학은 관악캠퍼스에 수조 건설을 준비하고 있었으며 선박연구소는 선형시험수조를 준공하고 ITTC의 회원기관으로 승인된 상태였다.

창립 회의가 개최된 선박연구소는 김훈철 박사가 기관을 대표하였으며 인하대학 수조는 조규종 교수, 부산대학 수조는 정정환 교수, 그리고 서울대학 수조는 황종흘 교수가 대표하고 있었다. 세 분의 기관대표가 학회의 전 회장이었으며 여러 참석자가 학회로부터 수조시험연구위원회 위원으로 임명받았는데 1976년 학회이사회의 건의와 다르게 KTTC는 학회와 관련이 없는 독립기구로 발족하였다. 다음 호리병 기사에서는 한국선형시험수조협의회(KTTC)가 학회와 무관한 독립기구로 발족하게 된 배경을 나만의 호리병 속 기억을 찾아 다시 구성하여 설명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